“하늘을 봐요. 아, 이런 하늘 처음 봐요.”
창문 커튼을 열면서 내가 말했다.
내 말에 주방에 있던 선생님들이 물 묻은 손을 털며 나왔다.
“와우! 오늘 정말 예쁘다. 가끔 이런 날이 있어요.”
정 선생이 창살에 다가서며 말했다.
윤 선생이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며 말을 받았다.
“이런 하늘이 가끔 있다고요. 나라양간지에서는 한 번도 못 봤는데…….”
내가 말했다.
“저도 이런 하늘은 방글라데시에서 처음이에요, 마이멘싱 하늘은 맨날 허연색. 해도 히스무레.”
창문을 열자 햇살이 앞다퉈 통통거리며 들어왔다. 그 햇살은 하늘빛에 물든 것 마냥 파랑으로 튀었다. 아침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창으로 들어와 반짝반짝 빛을 냈다. 양팔을 창문을 들어 올리고 한참을 둘레둘레 내다봤다. 창밖에서 초록초록 한 나뭇잎이 흔드는 방울소리가 들릴 듯한 색바람이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나무 위의 파랑은 하늘이라기보다는 쬬또그람의 배경이었다. 하얀 구름이 제 갈 길을 머뭇머뭇 가면서 배경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누가 더 넓은지, 뭐가 많은지는 따질 것이 아니었다. 하늘이 선명하다는 것 하나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런 하늘은 혼자여도 좋다. 가만히 보기에는 혼자가 더 좋을 수 있다. 둘이어도 좋다. 셋이면 이야기가 된다.
하늘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을 때가 있다. 마이멘싱의 하늘은 맨 날 무채색이다. 회색 시멘트 건물과 구분하기 어려웠고 하늘 전체에 명암이 없는 연무 낀 하늘 색깔이었다. 하물며 그 빛으로 만들어 낸 그림자조차도 흐리멍덩했다. 그림자의 반쯤은 시장에 내다 판 것 같았다.
낯설었지만 그때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서 처음 보는 화장한 새색시의 얼굴 같은 선명한 하늘을 보았다. 쬬또그램의 하늘은 새색시의 얼굴이다. 하지만 수줍음이 없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아침은 언덕 위의 하얀 아파트 5층, 어제 창문에 모기장을 설치했고, 샤워 장치를 바꿔 달았던 그 집이다. 정 선생 댁에서 했다. 사실 정 선생 댁을 찾은 것은 정 선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팀이 사전에 했던 약속 일정이 취소됐는데 그 약속했던 장소가 쬬또그람이라는 이유로 괜한 손님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어제부터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도 우리를 맞아 안내해 줬고 아침은 성찬으로 준비했다. 미역국에 양배추김치 2종 세트, 계란말이, 깻잎 반찬이다. 들밥을 먹는 것처럼 거실 바닥에 펼쳐 놓고 둘러앉으니, 여기가 미슐랭 식당이다.
“오늘 아침에 어디 갈 거예요?”
정 선생이 물었다.
“오늘은 하늘이 좋으니 바다지요. 파텐가(Patenga) 해변. 해지는 것도 좋을 텐데…….”
어제 어디 가자고 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주저 없이 나온 말이었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 초록의 바닷물이 어우러지는 바다. 젊었을 적엔 지겹게 다녔던 바다인데도 거기에 예쁜 하늘이 있고 출렁이는 바닷물이 있고 수평선이 있으면 좋았다. 배를 몰고 수평선을 향해 가면서 수평선이 없어지길 바랐다. 수평선을 정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수평선은 없어지지 않고 더 큰 수평선을 만들었다. 작은 섬들을 지나면 없어질 줄 알았지만 섬이 줄어든 만큼 수평선은 점점 넓어졌다. 사람 사는 일도 그와 같았다. 하나의 걱정이 없어지면 새로운 일이 나오고, 조그만 일들을 해결하면 더 큰 짐이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흰 구름이 파랑의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맑은 초록의 바닷물이 일으키는 성난 포말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늘 하늘이 맑기를 바랐다. 하늘이나 바다나 늘 움직임으로 그 생명을 이어가고, 사람도 늘 뭔가를 하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좋은 날은 더 많이 움직여 줘야 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송창식 님의 노래 한 구절을 속으로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