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꿈 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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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자카


나는 언젠가부터 여행길에서 카메라에 담기보다는 마음속에 담는다. 카메라에 몰입하다 보니 정작 무언가 놓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유럽 여행 후부터이다. 1994년이었나? 슬라이드로 감상하겠다는 일념으로 움직였던 그때 그 여름부터.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여 온 마음을 다해 눈앞을 스쳐 가는 장면들을 붙잡으려 했다. 고급 장비로 촬영하는 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직은 어린 아들에게도 “마음으로 담아라.” 속삭이며 권유하곤 했다. 파란 초원을 거느리는 얼룩말의 여유 있는 몸짓. 산꼭대기에만 하얗게 눈이 잠든 듯 쌓인, 평원 위의 위엄 있는 산. 아득히 먼 저곳, 멀리서 바다 위를 스치며 작은 파도를 일으키는 고래들. 태초 인간의 발자취와 같은 고대 도시와 마주한 낯선 인물들. 배낭에 남은 먼지와 묻은 모래 알갱이까지도 작은 증거가 된다.



사자왕과 누우들의 땅에서, 마사이마라 여행기


2016년 7월, 아들과 함께 떠난 케냐 마사이마라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의 배경이 된 아프리카 대초원에서 우리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 이른 아침, 열기구에 오르는 순간 마음은 이미 구름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천이 바람을 머금으며 부풀어 오를 때, 그 곡선미는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빨강과 주황, 노랑이 어우러진 내부에서 바라본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지상에서 볼 때는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초원이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거대한 생명의 태피스트리였다. 열기구의 그림자가 대지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자, 마치 거대한 새가 날갯짓하는 듯했다.

아들은 처음 보는 아프리카의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 여행이 아들에게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것을 직감했다. 마사이마라에서 가장 강렬했던 순간은 누우 떼의 대이동을 마주했을 때였다. 수십만 마리의 누우들이 끝없는 행렬을 이루며 초원을 가로지르는 장면은, 자연 다큐멘터리 속에서나 보던 장관이었다. 검은 점들이 물결치듯 움직이며 대지를 덮는 모습은 마치 땅 자체가 숨을 쉬는 듯했다. 각 개체는 작고 연약했지만, 수만 마리가 모이자 거대한 생명체가 되었다. 그들은 본능에 따라, 생존을 위해, 그리고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 위험한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사자와 악어의 위협 속에서도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생명의 의지와 자연의 질서를 읽을 수 있었다.

“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마사이마라는 새로운 세상이야!” 아들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TV에서 보던 『동물의 왕국』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경이로움에 말문이 막혔다. 그 순간 우리는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실감하며 겸허해졌다.

사바나 한복판에서의 식사는 이 여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언제 사자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대평원에 하얀 테이블보를 펼치고 정찬을 즐기는 일은 그야말로 긴장과 설렘이 공존한 순간이었다. 샴페인 잔에 따라진 황금빛 액체는 아프리카 석양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고, 갓 구운 빵과 달걀 프라이, 소시지가 놓인 하얀 접시는 거친 자연 속에서 문명의 세련됨을 보여주는 아이러니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야생동물들의 울음소리는 자연스러운 배경음악이 되었고, 끝없이 펼쳐진 사바나는 세상에서 가장 웅장한 식당이 되었다.

식사 내내 우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멀리 나무 그늘에 사자 가족이 쉬고 있지는 않을까, 저 풀숲 어딘가에서 치타가 사냥감을 노리고 있지는 않을까. 긴장감이 더해질수록 순간의 소중함이 더욱 깊게 새겨졌다. 아들도 곧 그 특별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 여행이 더 각별했던 이유는 아들의 태몽과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꾼 꿈속에서 사자 한 마리가 위엄 있게 등장했었는데, 그때는 단순한 태몽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마사이마라의 사자들을 실제로 마주하자, 그 꿈이 예언처럼 느껴졌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사자왕의 기운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광활한 초원에서 바라본 사자들의 당당한 자태는 아들이 앞으로 지녀야 할 용기와 리더십을 상징하는 듯했다. 꿈속의 사자왕이 현실에서 아들을 축복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프리카의 거친 자연은 엄마와 아들에게 각기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아들은 세상의 넓음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배웠고, 나는 자연 앞에서의 겸손함과 함께하는 시간의 귀함을 다시금 느꼈다. 열기구에서 본 사바나와 누우 떼의 대이동, 사바나 한가운데서의 식사, 태몽 속 사자왕의 존재까지, 그 모든 순간이 어우러져 2016년 7월의 그 여행은 우리 모자에게 평생의 보물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아들과 그때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 기억나? 마사이마라에서 누우 떼 봤을 때….” 그 한마디로 시작되는 대화는 언제나 따뜻한 추억으로 이어진다. 그 여행이 아들에게 남긴 것은 단순한 경험을 넘어 인생의 자양분이 되었고, 나에게는 엄마로서 자부심과 감사의 마음이었다. 마사이마라는 우리에게 꿈이 현실이 되고, 사자왕의 축복이 내려온 땅, 그리고 엄마와 아들이 함께 성장한 무대였다.




아침 햇살 속 열기구 그림자, 마사이마라의 꿈결 같은 순간


마사이마라누.jpg 숨 막히는 누우 떼의 실루엣, 아프리카 사파리의 진면목




여행, 꿈 바라기는 다음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