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 연습이 끝나고, 같이 배우는 젊은 친구가 물었다.
"언니. 요즘 임영웅 콘서트 표 구하기 힘들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임영웅이 왜 인기 있는지는 알겠는데, 나는 좋아하지 않아. 트로트는 취향이 아니거든."
그 친구가 순간 멈칫하더니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 그 표정 안다. '이 연세면 당연히 좋아하지 않나요?'
죄송합니다. 60대인데 트로트 대신 다른 걸 좋아해서요.
우리나라에서 나이를 밝히는 건 늘 복잡하다. 한국 나이 62세, 만 나이 61세, 학령으로는 63세. 이러나저러나 확고부동한 60대. 나이도 여러 방면으로 분류되는데, 내 취향도 여러 가지이면 안 되나?
몇 년 전, 한 아이돌 그룹의 무대를 보며 감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래도 좋고, 춤도 좋고, 그 열정이 보기 좋았다. 그냥 한 멤버의 팬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온라인에서 이런 댓글을 봤다.
"나이 든 아줌마들이 아이돌 좋아하는 거 보면 징그러움."
그 단어가 가슴에 꽂혔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누군가의 재능과 열정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왜 '징그럽다'라는 말로 평가되어야 할까. 그날 이후로 덕질을 접어야 하나 고민했다. 아니, 정확히는 덕질을 표현하지 않게 됐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진 게 아니라, 드러내는 게 두려워진 것이다.
웃긴 건, 내가 덕후 생활 하던 시절엔 그들이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 덕후 생활은 1970년대부터였다. 차범근 선수, 최동원 선수, 박노준 선수, 연세대 농구 신화의 주인공들(박인규 선수 등). 스포츠 잡지 모니터에 뽑히기도 했고, 서울신문사에서 준 위촉패가 지금도 있다. 덕후 생활은 계속 이어져 김연아 선수를 거쳐, 지금은 피겨스케이팅 전반의 열혈 팬이다. 4회전 점프의 역학을 공부하고, 새벽 2시 생중계도 챙겨 본다. 50년 가까운 덕후 생활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어느 날부터 누군가에 의해 나는 '징그러운 사람'이 되어 버렸다. 단지 아이돌을 좋아했다는 이유로.
뉴스에선 세대론이 쏟아진다. X세대, 586세대, 베이비붐 세대 등. 나는 그 어떤 틀에도 맞지 않는다. 클래식도 좋아하지만, 힙합도 듣고, 전통시장도 가지만 쿠팡 로켓배송도 애용한다. 나를 '세대'로 정의하는 순간, 나는 그 틀을 벗어나 버린다. 세대로 사람을 나누는 건 점성술로 성격을 점치는 일만큼 우습다. "너 전갈자리니까 집착이 강하데." 만큼이나, "60대시니까 이해가 안 가시죠?"도 터무니없는 말이다.
60대라 죄송하다고? 천만에.
OTT 드라마 <무빙>을 새벽 3시까지 정주행해도 죄송하지 않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 감탄해도 죄송하지 않다.
무신사에서 후드티를 구매해도 죄송하지 않다.
챗GPT에 레시피를 물어봐도 죄송하지 않다.
새벽 2시 피겨 생중계를 보며 잠 안 자도 죄송하지 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 숫자가 내 취향을 검열할 이유는 없다.
이제 나는 안다. 그 '징그럽다'라는 말은 나에 관한 게 아니었다. 그건 나이에 대한 편견, 세대에 대한 고정관념이 뒤섞인 일종의 언어폭력이 아닐까.
나는 지금도 계속 무언가를 좋아한다. 아이돌보다 피겨에, 대중음악보다 다양한 예술에 더 빠져 있다. 본질은 같다. 누군가의 열정과 성장에 감탄하고 함께 기뻐하는 일.
"나잇값 좀 하세요."
"그 나이에 그게 어울려요?"
그런 말들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내 나이, 내 맘."
오늘도 AI로 정보를 탐색하고,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고, 새로운 맛집 카페를 탐방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60대이지만 죄송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나의 방식으로 정의한 60대니까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이에 취향의 허락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아이돌 그룹도, 피겨도, 다 내가 애정하는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