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쓴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K-스피릿

by 나자카

요즘 온 세상이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K-POP 스타가 악마를 잡는다는 신선하고도 화려한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콘텐츠를 넘어 한국 문화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화려한 네온사인, 중독성 있는 비트, 칼군무.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이 가진 현재의 ‘멋’이다.


뉴스를 통해 케이팝의 성공 신화를 접할 때마다, 나는 문득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 풍경과 인물이 떠오른다. 바로 나의 유년 시절을 채웠던 초가집과 갓 쓴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세계가 열광하는 ‘K’의 최첨단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시간의 두꺼운 장막 너머의 풍경. 그곳에서 나는 ‘K’의 근본이 되는, 변치 않는 정(情)과 도리를 배웠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의 기억은 대부분 할머니와의 생활이다. 흙벽과 이엉으로 이어진 초가집은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아늑했지만, 현대적인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기 시설은 없었고, 캄캄한 밤이 되면 어머니는 등잔불을 켜서 어둠을 밀어냈다. 그 불빛 아래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변소는 밖에 있었고, 방 안 구석에는 늘 흰 바탕에 파란 풀 그림이 있는 사기요강이 제자리를 지켰다. 겨울밤에는 요강의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이 투박하고 느렸다.


그 느리고 투박한 시간 속으로, 우리 집을 아주 오래도록 찾아온 한 분이 계셨다. 바로 갓을 쓴 먼 친척 할아버지였다. 항상 깨끗한 도포를 차려입고, 위엄 있으면서도 온화한 표정으로 갓을 바로잡는 그 모습은, 당시 어린 내 눈에도 특별했다. 할아버지는 올 때마다 할머니께 극진한 예의를 갖추었고, 나에게는 늘 따뜻한 웃음과 귀한 말씀을 건네셨다. 등잔불 아래 할아버지의 그림자는 길고도 묵직했다. 그분이 앉아계신 자리는 언제나 우리 집의 중심이 되었고, 그 자리를 통해 나는 비로소 ‘어른’이라는 존재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사실 할아버지는 우리 집과는 아주 특별하고도 슬픈 인연을 가진 분이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의 첫 부인의 친정이었다. 할아버지는 새신랑이 되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부인을 병으로 잃었다고 했다. 애도 없이 신혼의 단꿈이 깨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찾아온 죽음 앞에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꼈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후 할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다른 분과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셨다. 보통이라면 마음이 아프거나 껄끄러워 발걸음을 끊을 법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달랐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머리와 수염이 새하얗게 세고, 거의 빠졌을 때도, 할아버지는 새 부인과 함께 우리 집을 찾았다.

갓 쓴 할아버지의 새 할머니는 늘 겸손하고 조용히 할아버지를 따랐고, 우리 할머니에게도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사돈댁 식구로 남아준 이 두 분을 극진히 대접하셨다. 어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할아버지는 슬픈 기억이 서린 이 집을 계속 찾는 것일까? 왜 할머니는 돌아가신 친지의 남편과 그 새 부인을 마치 친딸 부부처럼 맞이하는 것일까?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질문들이,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비로소 답을 얻는다.


갓 쓴 할아버지가 보여준 행동은 단순한 예의나 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와 신뢰에 대해 변치 않는 헌신이었다. 첫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그 부인과의 인연까지 끊어진 것은 아니라는, 깊은 관계 의식을 실천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첫 부인의 처가를 통해 그 사람과의 추억을 이어갔고, 이는 죽음을 넘어선 의리와 정을 보여주었다. 그 정을 할머니가 기꺼이 받아주었기에,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평생토록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등잔불 아래에서 요강을 곁에 두고 살았던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돈이나 명예보다도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은 도덕적 약속이 더 중요했다. 할아버지의 갓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게였고, 책임이었으며, 한 사람이 평생 지켜온 원칙의 상징이었다. 새 부인을 데리고 첫 부인의 친정을 찾는 일이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인지, 그리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할머니의 너그러움이 얼마나 큰 덕(德)인지를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현대의 ‘케데헌’은 노래와 춤으로 세상을 구한다. 그것이 가진 화려함과 메시지는 젊은 세대에게 큰 영감을 준다. 화면 속에서 악마와 싸우는 K-POP 스타들은 완벽한 퍼포먼스로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나는 ‘케데헌’이 전 세계에 보여주는 K-컬처의 매력 속에, 갓 쓴 할아버지가 보여주었던 바로 그 변치 않는 인간적인 가치가 숨어있다고 믿는다.


K-POP의 성공은 기술력과 재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팀워크, 상호 존중, 끈기,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향한 진심이 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서로를 챙기고, 팬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현하며,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 그것은 바로 할아버지가 평생 실천했던 ‘정’과 ‘도리’의 현대적 표현이 아닐까?


‘케데헌’의 화려한 무대 의상은 현대적인 ‘갓’이다. 그 ‘갓’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것은 분명 기술과 재능 덕분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성공의 근원에는, 갓 쓴 할아버지가 수십 년간 묵묵히 지켜온 ‘정’과 ‘도리’, 그리고 사람을 향한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이 깔려있다. 무대 위의 화려함은 순간이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인간적 가치는 영원하다.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뿌리다. 초가집의 등잔불 아래에서 지켜졌던 그 숭고한 인간관계의 가치가, 오늘날 ‘케데헌’이 전 세계에 던지는 감동과 공감의 핵심이 아닐까? 케이팝 스타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에너지와 열정, 그들이 팬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 그 모든 것의 뿌리에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한국인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갓 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 문화가 가진 진정한 품격(品格)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이 세계적인 열풍 속에서 절대 잃지 말아야 할 ‘K-스피릿’이 무엇인지 조용히 일러준다. 진정한 품격은 새로움을 좇는 속도보다, 오래 지켜온 마음의 깊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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