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이별이 가르쳐준 것

by 나자카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 커피를 내리고 천천히 앉아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줄리언 반스의 『웃으면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이었다. 표지의 세련된 디자인이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죽음’이라는 단어와 ‘웃음’이라는 말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있는 것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다.

젊은 시절, 나는 힘든 날이면 ‘죽을 때 웃으며 죽자’라고 혼잣말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래서일까, 반스가 죽음을 유머로 품어내는 작가라는 사실이 반가웠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제목이 번역가의 해석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해석이었으니까.


반스의 문장은 담담하면서도 따뜻했다. 그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았다. 대신 그 곁에 앉아, 두려움과 기억, 유머를 함께 풀어냈다. 반스의 책에는 오래된 지혜가 담겨 있었다. 철학 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몽테뉴가 남긴 말. 그 문장을 읽을 때, 나는 문득 창밖을 보았다. 햇빛 아래 흔들리는 나뭇잎이 눈부셨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 그렇게 선명하게 느껴진 적이 오랜만이었다.

그 문장들이 내 안에 스며들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나는 10개월 반 동안 세 번의 이별을 겪었다. 친정어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잇달아 떠나보냈다. 그 시간은 길고 아득한 꿈 같았다. 처음엔 왜 이렇게 잇따라 찾아오는지 원망스러웠고, 마음이 텅 비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 상실의 자리가 새로운 감정으로 채워졌다.

죽음은 슬픔만을 남기지 않았다. 그 안에는 오래된 사랑의 흔적이 있었다. 떠난 이들의 모습이 문득 떠오를 때면, 그들이 남긴 말과 표정이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제야 관계의 진짜 의미를 배웠다. 사랑은 함께 있을 때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자라난다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있을 때 잘하라고. 그 말이 이제야 뼈저리게 와닿는다. 젊은 시절 나는 바쁘게 살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내 삶을 꾸리느라 정신없었다. 부모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실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러다 조금 여유가 생겨 돌아보니, 이제 아무도 안 계셨다.


그리움은 사무쳤다. 밤이면 꿈속에서 그분들을 만났다. 엄마는 늘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찾아오셨고, 돌아가신 지 오래된 아버지와 함께 오시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는 밝은 모습으로 잘 지내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 중년의 남자를 보면 문득 아버지가 떠오른다. 늘 같은 스타일의 곤색 양복을 입었던 아버지. 평생 검소하게 살 수밖에 없던 분이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싸게 산 서류 가방이 마음에 든다며 그 가방을 들고 가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꿈에서 깨면 나는 안심한다. 두 분이 함께 행복하게 지내시나 보다 하고. 그러면서도 후회가 밀려온다. 살아 계실 때 왜 좀 더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을까.


할머니도 그렇게 떠나셨다. 주름진 손으로 우리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살림하시던 그 손길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아득히 먼 어린 시절, 열 살도 채 되지 않았던 나는 할머니와 같은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곤 했다. 어느 날 밤, 할머니의 등 뒤에 누워 잠이 오지 않던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할머니가 언젠가는 돌아가신다는 것을. 그 생각이 떠오르자 눈물이 흘러나왔다. 소리 없이, 한없이 울었다. 할머니가 깰까 봐 숨죽여서. 그것이 내가 죽음을 처음 인식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다. 회상할수록 안쓰러움과 후회가 밀려온다.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얼굴빛이 생각난다. 나는 그 빛깔이 죽음을 예고하는 빛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좀 더 자주 찾아뵐걸. 좀 더 다정하게 말씀드릴걸. 그분이 아프다고 하실 때, 좀 더 귀 기울여 들을걸.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이라도 꼭 껴안아 주었다면….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내 유일한 아들과는, 이런 슬픈 관계로 이별하고 싶지 않다고. 떠났을 때 후회가 아니라 따뜻한 기억만 남기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달라져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말을 걸 때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맞출 것이다. 사소한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을 것이다. “나중에”라는 말 대신 “지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걷고, 함께 웃을 것이다. 잔소리보다는 격려를, 훈계보다는 이해를 건넬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할 것이다. 내 부모님과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부족했지만, 아들에게는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 언젠가 내가 떠나는 날, 아들이 후회 없이 나를 보낼 수 있도록. 그리움은 있되 미안함은 없도록.

예전의 나는 거절이 두려워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다. 아들도 나를 닮았는지 비슷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거리를 두되, 마음은 닫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반스가 말한 ‘죽음과 함께 사는 법’이란, 어쩌면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하고도 평온히 살아가는 것.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줄리언 반스와 죽음에 대한 긴 대화를 나눈 것 같다고. 그 대화는 나를 한층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죽음을 단순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덮고 창밖을 보았다. 저녁노을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하루가 저물고 있지만 그 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떠난 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들이 남긴 사랑으로, 이제 제가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죽음은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나는 더 깊이 살아가고 있다. 떠난 뒤, 나는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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