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지.”
이 말을, 곧 내가 아들에게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
자식이라고는 늦둥이 아들 하나뿐인 나에게, 이 문장은 그저 흔한 훈계가 아니다. 그동안 함께 걸어온 시간의 끝이자, 이제 각자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호 같은 것이다.
우리 집 늦둥이는 이제 대학생이다. 지금껏 귀하게, 말 그대로 ‘온 가족의 사랑 독차지’로 자라왔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양말 한 짝이 어디 있는지 몰라 나를 찾고, 원룸에 가져갈 것들을 챙기는 것도 내 몫이다.
그런 녀석이 요즘 들어 몸짓으로 ‘엄마, 나 이제 진짜 독립해야겠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웃어넘겼다. 독립이라니, 아직 용돈 관리도 허술하게만 보이는 녀석이 무슨 독립인가 싶었다.
그런데 며칠 후, 진지하게 말했다.
“친한 형 아파트 방 하나에 들어갈까 해요. 원룸 가격이 비싸잖아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야지’ 하면서도 속으론 ‘가지 마라’ 하는 그 복잡한 얼굴. 그게 바로 내 얼굴이었다.
나는 겉으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제 네 세상이지.”
그런데 속으론 이렇게 생각했다.
‘그럼 나는 이제 뭐 하지…?’
사실 그전에도 조짐은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들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하는 법을 배워왔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느라 아들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았다. 그때 나는 생활 계획표를 꼼꼼하게 세워서 냉장고 문에 붙여 놓았다. 아들은 그걸 보고 학원 차량 시간에 맞춰 스스로 움직였다. 피아노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니, 이 친구가 계획표를 머리에 다 외우고 다니더라고요. 시간 되면 ‘선생님, 저 이제 가야 해요’라고 따지면서요.”
아들이 대학에 간 후,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교육 강의가 생각났다. 특히 아들 교육에 일가견 있다는 전문가가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원래 시키는 걸 하는 것보다, 원래 해야 하는 것을 규칙에 맞게 하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엄마는요.”
그래서인지 아들에게 잔소리 하나 안 해도 학교도, 학원도 개근하는 생활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였다. 아이가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건.
수능을 마친 겨울방학, 아들은 운전면허를 땄다. 시 운전 첫날, 잠깐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우린 괜히 웃음이 났다.
“이제 트럭 운전사라도 해서 밥 벌어먹을 수 있겠네.”
그 한마디에 세 식구가 동시에 웃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짧은 운전이, 아이가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또 하나의 장면이 될 줄은.
그 후로 우리의 대화는 조금씩 달라졌다. 예전에는 “과제 했니?”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졸업 후 계획은 잘 되고 있니?”로 바뀌었다. 그의 세계가 점점 넓어질수록, 나는 내 세계가 조금씩 비워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슬픔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엄마’로 살아오느라 잠시 잊고 있던 ‘나’라는 존재가 조용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아들이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이던 시절, 우리는 함께 세계여행을 다녔다. 비행기 창가에서 손을 잡고 구름을 내려다보며, 나는 늘 그랬다. ‘이 아이가 나보다 더 멀리, 더 자유롭게 날아가면 좋겠다’라고. 이제 그 바람이 현실이 되려 하니, 내 안에서 또 다른 과제가 생겼다. 엄마의 역할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마지막 과업, 그리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
늦둥이는 언제나 내 일상의 중심이었다. 아침에는 등교 준비 잘했나, 저녁에는 카톡 확인, 밤에는 귀가 잘했을까 걱정. 그가 원룸으로 옮긴 후 냉장고에 반찬은 남고, 세탁기에는 빨래가 덜 돌고, 무엇보다 집이 너무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좀 편하시겠네요!”
하지만 나는 안다. 늦둥이의 독립은 부모에게 ‘드디어 얻은 자유’가 아니라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공허’라는 걸.
아들이 처음 집을 떠날 때, 나는 짐을 싸느라 집안을 뒤집어 놓았다. 집에 있는 트렁크란 트렁크는 모두 꺼내 짐을 싸자 이렇게 말했다.
“엄마, 너무 많이 챙기지 마요. 혼자 해 볼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가 목에 걸렸다. 그래도 참았다.
“그래, 해 보는 거야.”
문을 닫고 나간 아들의 뒷모습이 엘리베이터에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갑자기 생각났다.
“아차, 속옷 챙겨야 하는데….”
이후 며칠간, 집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상하게 조용했다.
밥솥에 밥이 반쯤 남고, 세탁물 바구니가 텅 비었다.
드라마를 보다가 웃을 일이 줄었다.
결국, 나는 문득문득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요즘 애들 참 당차지 않아? 우리 아들도 나름 계획적이더라니까.”
(물론 계획만 세우고 실행은 아직이지만.)
그러다 어느 날, 톡이 왔다.
“엄마, 혹시 세제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
“목욕탕 청소 어떻게 해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독립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걸. 아들은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나는 여전히 놓는 중이다. 나는 이 과정을 ‘늦둥이 독립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듣기에는 아들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다.
지금 원룸에서 혼자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아들.
그다음은 졸업이고, 그다음은 취업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들은 정말로 완전히 독립하게 될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자기 인생의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어른이 되는 것.
그가 세상으로 한 발 내디딜 때, 나도 함께 조금씩 그늘에서 나와 오랫동안 미뤄둔 나의 꿈과 시간을 되찾고 있다.
이제 ‘양육의 짐’을 내려놓고 비로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연습을 시작한다.
엄마로서의 마지막 과업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다시 ‘나’로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