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할머니

by 나자카

며칠 전 꿈에 할머니가 오셨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내 방에 들어오신 할머니는 내 침대 곁에 앉아 내 손을 잡아주셨다. 아무 말씀 없이 그저 곁에 계셨다.

꿈에서 깨어나 한참을 그 온기를 떠올렸다. 할머니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러 오신 걸까. 아니, 어쩌면 말이 필요 없었던 걸까.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위로를 전하러 오신 건 아니었을까.



1972년의 환갑잔치


할머니, 기억하시지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우리 집에서 열렸던 그 환갑잔치를. 1912년 임자년생 할머니의 환갑을 축하하려고 정말 많은 친척이 모였었다. 금 쌍가락지와 곱게 지은 한복, 정성스러운 선물들이 할머니 앞에 놓였던 그날을 나는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 시절 환갑잔치는 집안만의 일이 아니었다. 온 가족이, 온 동네가 함께 어우러지는 큰 잔치였다. 대청마루에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음식 냄새는 골목 끝까지 번져 나갔다. 그날 할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온종일 손님들을 맞으셨다. 수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시면서도, 한결같이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024년의 환갑


내 환갑이 되었다. 갑진년이니까. 손가락으로 육십갑자를 세며 늘 말씀하시던 “우리 맏이는 갑진년에 태어났지. 갑진생.” 그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할머니 환갑으로부터 52년 만에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요즘은 예전처럼 잔치를 크게 하지 않는다. 가족끼리 모여 소박하게 기념하며 지나가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잔치를 치러줄 이도, 함께 나눌 사람도 많지 않았다. 아들은 아직 대학생이고,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은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특히 친정어머니가 떠나신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더욱 허전하다. 그래서였을까. 화려한 자리를 마련하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더 편안하게 다가왔다. 시대가 달라진 탓일지도 모른다. 환갑은 이제 장수를 크게 축하하는 잔치가 아니라, 인생 여정 속에 새겨지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정표가 지닌 의미만큼은 여전히 귀하다. 그 자리에 서면, 마음은 결국 감사와 겸손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음을 새삼 느낀다.



오로라 아래에서


생일 때쯤 해서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캐나다 옐로나이프로 오로라를 보러 갔다.

할머니도 아시겠지만, 오로라는 참으로 신비로운 빛이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춤추는 초록빛, 보랏빛의 커튼을 바라볼 때마다 내 안의 지난 기억들도 반짝이며 흘러갔다. 그 빛을 마주하며 나는 매일 밤 지난 60년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극지의 하늘에서 춤추는 오로라를 보며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할머니께서 바라보셨던 별들도, 지금 내가 바라보는 별들도 같은 하늘 아래 있구나 싶었다. 시간은 흘러도 하늘은 변하지 않고, 결국 할머니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혈연만이 아니라 이 광활한 우주 전체라는 것을 느꼈다.

아들이 건네준 멋진 스카프 하나만으로도, 우리 세 가족이 함께 살아온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다. 화려한 잔치도, 값비싼 귀금속 선물도 없었지만, 가족과 함께 본 오로라의 기억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것


할머니, 앞으로의 인생은 이제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겠지요. 60년을 살며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남은 시간을 내 힘으로 써 내려가야 할 때인 것 같다.

그것을 알려주시려고 꿈에 오신 거지요?

환갑잔치 대신 오로라를 선택한 것도, 명품 백 대신 아들이 건네준 스카프에 만족하는 것도, 모두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지혜일 것이다. 시대는 바뀌어도 가족의 사랑과 삶에 대한 감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형식보다 마음이, 화려함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52년 전 그 환갑잔치에서 할머니가 보여주신 기품 있는 미소를, 이제는 내가 이어받아 살아가겠다. 할머니께서 그러셨듯, 나도 내 방식대로 삶을 온전히 살아내겠다.

오로라 아래서, 꿈속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할머니는 늘 함께 계시는 것 같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손을 잡아주셔서, 함께 있어 주셔서



당신에게도 꿈에 찾아오는 소중한 사람이 있나요?

그분은 어떤 말 없는 위로를 건네주시나요?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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