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향한 시선

우리들의 수상록 | 에필로그

by MeeyaChoi

평생 그림을 그렸던 들라크로아는 이도 다 빠지고 숨도 제대로 못 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림을 발견했다고 고백했고, 빛과 어둠의 화가 렘브란트는 가족도 돈도 명예도 건강도 다 잃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을 꿰뚫어 보는 시선으로 지친 영혼까지 담 자화상을 그렸으며(그림 1), 수수께끼 같은 기호로 캔버스를 가득 채웠던 미로는 일흔에 이르러서야 다 버리느라 탈진했다 실토하며 넓디넓은 푸른 여백 위에 작대기 하나와 점 12개만 남겼다 (그림 2).

ㅣ............

인생이 완벽하다면, 나는 이 수상록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모두 잘 먹고 잘 살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더 큰 욕망 앞에서 우리 행복은 늘 미완성이다. 어디에나 다양한 힘의 하이어라키가 있고, 그 높낮이로 인한 시점의 차이가 존재하며, 더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갈등은 끝이 없다. 보이는 모든 것이 변하고, 지식과 상식도 경험을 넘기 어렵기 때문에, 다 안다는 우리의 생각은 오해다. 게다가 우리 마음이 바라는 정도가 다 다르니까, 왜 제대로 잘(?) 못하냐는 불만은 부당할테지만, 그렇다고 불안이 호락호락 가라앉지 않는다. 한 술 더 뜬 심리학이 결점투성이인 우리에게 자꾸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하는 고무줄 잣대까지 갖다대는 통에, 어지러운 선을 못 피하고 마구 밟는 우리는 더 쪼그라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철학사를 뒤져봐도 일반적인 방법만 있을 뿐, 우리 눈높이에 딱 맞는 마땅한 답이 없다. 안갯속 같은 인생에서 문득 혼자임을 깨달으며, 낙심하는 우리의 가슴은 외로움으로 사정없이 찢어진다.

만약 SF 소설에서처럼 매일 날씨도 똑같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집에서 똑같이 살며 아무 차이가 없다면, 사회가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철학도 문학도 수학도 과학도 필요없어지고, 할 일도 거의 없어질 거다. 그때는 사람들이 다시 시기 질투가 난무하는 변화와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할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꿈이 있고, 어른에게는 어른의 하루가 있다. 남자와 여자의 걸음이 다르고, 건강한 자와 병자의 처지가 다르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방식이 다르다. 이토록 다른 우리지만, 내가 혼자이듯 남도 혼자이며, 내가 아프 듯 남도 아프다. 나에게 가족과 친구와 내 세상이 있듯, 남에게도 가족과 친구와 그들의 세상이 있으며, 서로 다른 내 세상과 남의 세상이 모여 큰 숲을 이루고 좋든 싫든 공존한다.

라디오에서는 정의할 수도 측정할 수도 없는 행복을 이야기하며, 행복해지기 위해서 일과 사랑과 희망이 필요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누리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면 불행하다는 칸트의 말을 전하지만, 칸트가 지금 살아있다면 더 많은 조건들을 나열했을 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행복이 인간의 권리라는 생각은 오해라는 어떤 철학자의 말이나,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모습이 제각각이라는 톨스토이의 두리뭉실한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이제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고 거울 속 내 모습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며 그 속에서 나와 닮은 우리를 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어쩌면 가슴이 더 시릴지도 모르는 생의 빈 여백을 마본다.


?????????

!............


그대!


지금 이 무명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건강과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찾은 그대는 이미 행복하며, 이제 인생이 완벽해야 한다는 오해를 푸시고, 남은 생의 여백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견디는 지혜와 함께, 살아있는 무한한 기쁨을 누리시고, 행복을 향한 쉼없는 열정을 발견하시길 응원합니다.


무명작가 미야 올림




그림 1. 렘브란트의 자화상 (86x70.5cm)

https://fineartamerica.com/featured/self-portrait-in-at-the-age-of-63-rembrandt-van-rijn.html


그림 2. 호안 미로. 블루 1,2,3 중 2(270x355cm)

https://www.joan-miro.net/blue.jsp#prettyPhoto



참고 자료들.


* 고흐(1853-1890) 영혼의 편지.

고흐. 캔버스처럼 우리 삶도 무한히 비어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들라크로아(1798-1863). 난 이도 다 빠져버리고 숨도 제대로 못 쉴 때가 되어서야 그림을 발견했다.

* 렘브란트(1606-1669). 네덜란드 화가.

* 미로(1893-1983). 스페인 화가. 추상과 기호의 장인. 시공사


* 인류가 피비린내나는 갈등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이 진리가 되었다. 빛은 늘 같은 빛이었지만, 빛이 파동과 입자로 이해되기까지, 인류사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천동설 (2세기 경) 프톨레마이오스. 지동설 (16세기 이후).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빛 파동설(1660), 입자설(1690), 파동+입자=광자설(1905)


* 지진으로 이탈리아 라퀼라 시가 초토화됐고, 전 세계 과학자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여섯명의 과학자들은 과실치사 혐의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두 번의 큰 전쟁 후 낡은 건축물들 수리에 장애물이 된 미비한 법령이나 재정난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라퀼라 (L'aquila)지진 (2009). 이재우 솔바람 (2022). 예측 불가능성. 브런치 스토리.

연합뉴스 (2016. 8.25) 이탈리아 지진피해 인재? 다른 위험국보다 대비책 미흡.


* 매기 브라이언.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소크라테스. 정의란 무엇인가?

플라톤. 보이는 세계의 모든 것은 변하며, 아무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데카르트. 인간은 스스로를 상식이 잘 갖춰진 사람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상식이 세계에서 제일 잘 팔리는 상품이다.

로크. 인간의 지식은 결코 그 자신의 경험을 넘어 나아갈 수 없다.

버클리. 진리는 모두가 바라는 것이지만, 몇몇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피히테. 한 사람이 어떤 철학을 선택하는지는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에 달려있다.


* 헤르만 헤세


안갯속에서


신기하여라, 안갯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은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모두 혼자다.


나의 삶이 아직 환했을 때,

내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려,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떼어낼 수 없게 나직하게

모든 것들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신기하여라, 안갯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다.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7) MeeyaChoi 수정.



* 심리학이 말하는 악인들. 마키아벨리적 악인, 나르시시즘적 악인,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적 악인, 거짓말하는 위선자 등.


* 놀라운 신세계(헉슬리, 1932), The giver (Lowry, 1993), 1984(조지 오웰, 1949), 로건의 탈출. Logan's run(1967). 모두 획일화되도록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는 세상을 그렸고, 탈출로 끝남,


* 칼 세이건. 코스모스. 변화가 없으면 과학도 필요없어진다.


* 톨스토이. 안나 까레리나, 행복의 발견 등, 나에게 나의 세상이 있듯 남에게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퇴고만 백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