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탈출구가 안보였을 때 성당 까페에서 홍성남 신부님의 '너나 잘 해 5'를 읽고, 나도 '똥 잘 싸듯이 화를 잘 쏟아낼 수 있는 글'을 한 번 쓰고 싶어졌지만, 뭘 어떻게 써야할지 오리무중이었다. 때마침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나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여 근황을 업데이트하다가, 누구는 출생신고를 1년 늦게 해서 정년도 1년 늦다는 등 정년까지 남은 날을 셌다. 나도 덩달아 세다가 내 생일은 분명하지 않다며 혼자 갸우뚱했더니, 시끌벅적한 중에 어찌 들었는지 다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괜히 말했다 싶었지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어서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차가운 바다 바람이 쌩쌩 불던 날, 하늘까지 닿을 듯이 키 큰 나무들로 삥 둘러싸인 운동장에, 나 같은 꼬마들이 빼곡하게 줄서있었고, 나도 이름을 부르는 데로 가서 왼쪽 가슴에 분홍색 리본을 달고 분홍색 깃발을 따라서 교실로 갔다. 이런저런 일정이 끝난 뒤에 선생님이 남으라더니, '니가 진짜 미야가 아니다' 하셨다. 혼자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버지는 동사무소에 가셔서 '부모가 무식하여...'라는 시말서를 쓰시고 때늦은 출생신고를 하셨다. 이후 나와 진짜 미야는 큰 미야 짝은 미야로 불렸고, 나는 1년 내내 학교에만 가면 토하는 바람에 한두 시간 만에 조퇴했지만, 학년이 올라가서 반이 바뀌자 괜찮아졌다.
친구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곧, 그 해 맞냐, 취학통지서도 없이 어떻게 입학식에 갔냐고 질문을 쏟아냈다. 막내고모의 귀한 외동아들 땡땡이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땡땡이가 학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나도 그냥 입학식에 보냈다 하셨으니까, 그 해가 확실하다, 엄마가 일관되게 '니 낳고 내가 더워서 죽을 뻔했다'고 하신 걸로 봐서 엄마인 거 맞고, 여름에 태어난 거도 맞다며, 내가 담담히 해명했다. 사십년지기 친구들은 1초도 못 버티고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고, 그때는 그럴 수 있다, 그래도 너무 했다, 니 사촌 땡땡이 고맙네, 니는 이 세상에 없었네, 동명이인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지들끼리 왈가왈부하며 나를 놀리기 바빴다.
자매 넷이 처음 떠난 짧은 여행에서 제일 가까운 내 생일을 축하하자는 이야기에 내가 쭈뼛거리며 이 비화를 말했더니, 처음 듣는 언니들은 차마 웃지 못하고 '태어나느라 고생했고, 사느라 수고 많았다'며 위로했다. 두 번 듣는 동생은 잊어버렸는데 또 들어도 웃기다며 어떻게 입학식을 혼자 갔냐, 글자도 모르고 학교 가서 어떻게 아직까지 공부하냐, 조기교육 다 필요없다며, 또 까르르 웃었다. 아마도 언니 오빠 학교 가는 길에 따라갔을 거고, 글자는 몰라도 같이 놀면서 헌종이 잘라 만든 가짜 돈은 셀 줄 알았고, 아버지 돌아가시자 큰 도시로 나가 만났던 중학교 수학쌤이 너무 무서워서 꼼짝없이 숙제하다가 지금까지 공부하게 됐다는 과거지사를 짤막하게 말했다. 마지막 날 엄마를 만났을 때 언니들이 자초지종을 물으니까, 늘 당당하시던 엄마는 '야~는 없어서 못 먹였다'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신기하게도 내 생일의 비밀을 듣자 우울증 앓던 지인도 '안 그래 보이는데...' 하더니 눈물나게 웃었고, 말 안듣는다고 엄마가 자기를 우물에 집어던져서 죽을 뻔했는데 할매가 내려준 두레박을 잡고 올라와서 살았다는 쌤도 '그건 쫌...' 하더니 빵~ 터져서 웃었다. 어린 내 마음에 숨어있던 두려움과 서러움이 다른 사람들을 웃게한다는 게 쫌 이상했지만, 그냥 나도 따라 웃었다. 오랫동안 이 이야기를 억울한 버전, 화난 버전, 슬픈 버전, 평온한 버전으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글 속에 비친 어색한 나를 이리저리 각색해봤지만, 유리가면들이 다 너무 쉽게 깨졌다. 다른 사람들이 웃는 걸 보고 내 서러움이 웃을 수 있는 일임을 알았으니, 퇴고만 백 번 끝에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홍성남 신부님 글처럼 웃는 버전으로 쓴다. 생일이 대수냐, 나는 '진짜 나'고, 태어났으면 됐지.
나의 두 스승님은 글쓸 때 '백 번 고쳐야한다', '앞에 쓸 거 앞에 쓰고, 뒤에 쓸 거 뒤에 쓰고, 있어야될 거 쓰고, 없어도 될 거 지우라'는 뻔한 이야기를 하셨다. 학교에서 영어 쌤한테 배웠다며, 딸은 'Don't tell. But show' 팁을 알려줬다. 거기에 더해서 나는 마음을 백 번 가다듬고, '퇴고만 백 번'을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