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수상록 |
공짜 통계 소프트웨어에서 인간을 포함한 28 종류 동물의 몸무게와 뇌무게가 포함된 데이터를 만났다. 평소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던 터라, 몸과 뇌의 관계를 그래프로 그려봤더니, 뇌가 작아서인지 일찌감치 멸종한 공룡 빼고, 몸무게와 뇌무게가 비례하며 일직선에 놓였다 (그림 1). 몸이 작아질수록 뇌는 작아지고 몸집 대비 뇌의 비율은 커지면서, 작고 효율적인 뇌가 된다는 할러의 규칙이 잘 보였다 (그림2). 인간의 뇌는 코끼리에 이어 두 번째로 크고, 몸집에 대한 뇌의 비율은 붉은털 원숭이나, 두더지, 생쥐처럼 매우 높았지만, 제일 크지는 않았다. 곧잘 싸우는 인간들이 으르렁거리는 동물처럼 보였는데, 인간이 동물 데이터에 딱 포함된 걸 보니, 더 실감났다. 옛날 옛적 진화과정에서 다들 이리저리 갈라졌다고 하니까, 동물에게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보이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동물의 욕망이 사냥과 짝짓기 같은 생존 목적인 데 비해, 뇌가 큰 인간의 욕망은 훨씬 정교하고 복잡하다. 돈, 명예, 권력, 사랑, 행복에 대한 욕망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살면서 좋게 평가받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종류를 다 따지기 어렵도록 끝이 없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서, 온갖 불만과 갈등이 시작된다. 좋고 싫은 것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모두 좋다고 생각하는 걸 다 똑같이 나눌 수 없기 때문에, 니가 더 가졌다 내가 덜 가졌다는 시기 질투로 다툼이 잠잠할 새가 없다. 온갖 철학자며 성인들이 '저만 옳다고 주장할 때 비로소 악인이 된다'며 경고하고, '욕망은 다 껍데기니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와지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인간의 만족에는 상한도 없고, 욕망을 이겼다는 인간도 별로 없다.
욕망을 쫓는 인간들은 문자를 발명해서 지식을 기록하고 축적하며 문명이 진화했다고 생각하지만, 늘 상실이 뒤따른다. 자동차를 얻은 대신 덜 걸으니까 다리가 약해지고 매연으로 공기가 나빠져서 숨쉬기가 힘들어졌으며, 밤도 낮처럼 환하니까 불면증이 찾아오고, 내비게이션이 길을 다 가르쳐주니까 방향감각을 잃었으며, 많이 먹고 덜 움직이니까 몸이 병들고, 기계만 쳐다보고 사람과 덜 어울리다가 외로움에 떤다.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인간은 욕망과 행복이 헷갈려서, 무섭다고 죽여 없애고, 멋있다고 잡아서 몸에 두르고, 맛있다고 먹어치우면서, 많은 동물들이 멸종되고 생태계가 교란되며 파괴되었다. 이제 바다에서는 고래도 펭귄도 사라질 위기에 내몰렸고, 땅에서는 사자도 호랑이도 곰도 보호구역이나 동물원에만 있으며 똑똑한 코끼리도 가축이 되었고, 영악한 욕심쟁이 인간만 그 수가 대폭발하여 동물의 왕국이 흔들거린다.
드물게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고 나름 절제했던 철학자들은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으로 이성을 꼽았다. 이성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 이성으로 만든 법과 윤리와 도덕은 인류가 일군 공동 재산이다. 나보다 남의 행복을 더 바랄 자신이 없고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욕망이 들끓는다면, 같이 타협해서 만든 법이라도 잘 지키는 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마지막 도리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살아남는 동물이 있을까? 뇌도 없는 바이러스 때문에 다 죽을 수도 있고, 새로운 빙하기로 다 죽을 수도 있고, SF 영화에서처럼 먼 우주에서 온 외계인에게 다 죽을 수도 있다. 또 의외로 인간의 천적은 인간이어서 서로 싸우다가 다 죽을지도 모를 일이니, 어쩌면 내가 가장 조심해야 할 적은 욕망에 사로잡힌 나일지도 모른다.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 수 있는 행복이 주어졌는데도, 사람은 그 기쁨이 적다고 불평한다'고 적었다.
* R Animals 자료.
* 할러의 규칙. 몸집이 작아질수록, 뇌가 작아지지만 몸집 대비 뇌의 비율은 커지며, 작고 효율적인 뇌가 된다.
* 최재천 동물학자.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여러 동물의 행동과 인간사회를 비교했다. 공룡, 쥐, 고래, 벌, 개미 이야기도 있다. 쥐 같은 작은 포유류가 공룡 알을 다 먹어치워서, 공룡이 멸종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적었다. 소행성의 충돌로 공룡이 멸종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 BBC 동물다큐들 황제펭귄 (The Emperor penguin) 등. 펭귄들은 다같이 얼음골에 모여 새끼를 다리 사이에 품고, 서로 꽁꽁 뭉쳐서 눈보라를 이겨내며, 새끼를 지킨다. 표범 같이 생긴 어미는 새끼들이 첫 사냥에 성공하자마자, 소리없이 떠났다. 똑똑한 코끼리는 할머니 코끼리 엄마 코끼리 누나 코끼리가 다같이 새끼 코끼리를 키운다. 원숭이들은 가짜 인형 원숭이가 넘어져서 안일어나니까 죽은 줄 알고 서로 껴안고 위로하며 죽음을 애도했다. 기린이 죽자 한 기린이 곁을 지키고, 또 한 기린이 떠나더니 해질녘에 지평선 너머로 이 기린 저 기린이 몰려와서, 죽은 기린을 조문했다.
* 나의 문어선생님 (My octopus teacher) 그레이스 포스터. 상어의 공격을 받은 문어가 8개 다리의 빨판으로 조개껍데기를 잡고 갑옷처럼 머리를 감싼 채, 축구공보다 빠르게 이리저리 구르다가 순식간에 상어의 등에 올라타며, 적의 사정권을 벗어났다. 그러니까 작고 약하다고 생존 싸움에서 꼭 불리한 건 아니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 김석.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가? 2017. 5. 14. 연합이매진.
* 톨스토이. 행복의 발견, 저만 옳다고 주장할 때 비로소 악인이 된다. 욕망은 다 껍데기니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와지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 수 있는 행복이 주어졌는데도, 사람은 그 기쁨이 적다고 불평한다.
* 에머슨. 진화로 인한 상실.
* 쇼펜하우어. 행복을 위해 태어났다고 믿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림 1. Animals 몸무게와 뇌 그림 2. Animals 몸무게와 (뇌/몸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