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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yaChoi Dec 03. 2023

깨알 인센티브

정상인이십니다요!

        언젠가 지인의 초청으로 중학교 직업 특강에서 통계전문가를 소개하다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체험했다. 맨 뒷자리 둘은 머리를 빗으며 거울을 보고 있었고, 창가 애는 눈길이 하늘 끝에 멈췄고, 나머지는 다 팔베개하고 엎드렸으며, 딱 한 남자애만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었다. 까만 머리꼭지들을 바라보며, 피피티(ppt)에 의지해서 간신히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돌연 애들이 동시에 스르륵 일어나 앉았다. 깜짝 놀란 나는 이야기를 까먹고 숨을 멈췄고, 우리는 잠시 마주 봤다. 찰나의 정적이 흐르고 정신 차린 내가 다시 입을 열자, 애들이 또 동시에 스르륵 엎드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애들은 두어 번 더 일어났다 엎드렸다를 반복했다. 사탕 한 알 없이 먼 나라 통계 이야기를 하며, '무서운 중학생들'의 눈높이를 못 맞춘 내가 고작 40분을 못 버티고 식은땀에 젖어 와들와들 떨던 중에, 종이 울렸다.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통계 한 과목이 폐강되어, 갑자기 신입생 대학수학을 가르치게 됐다. 1학년 애들도 1학년 수학도 엄청 오랜만인데, 머리 희끗한 선생을 맞이하는 애들의 시선은 무심했다. 내 목소리만 빼면 고요한 강의실은 점심시간 직후라 더 그런지, 애들은 축 쳐져있거나, 좀 졸거나, 딴짓했고, 점점 가장자리와 뒷자리로 옮겨가더니, 급기야 앞자리와 가운데가 텅 비었다. 중간고사가 지나자 시험을 잘 못 본 애들이 드문드문 빠져서, 강의실이 휑해졌다. 그 중학교 교실의 공포가 떠올라, 잠이 안 왔다.

        온갖 방법이 안 먹히던 어느 날, 늘 사이버 강의실에 올리던 과제를 시험지 모양으로 프린트해서 나눠줬더니, 딴 종이에 풀었다가 꽤 성의껏 옮겨 적은 티가 나는 풀이가 돌아왔다. 그걸 앞에 놓고, '잘 한 애', '좀 틀린 애', '못한 애', '안 한 애'로 조를 짜서 과제조를 알려주고, 이제부터 혼자 과제 제출하면 5점, 조원이 다 제출하면 5점을 더 준다고 선포했다. 내내 조용하던 강의실이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모르는 애다, 안 왔다, 내 나머지 5점은 어떻게 하냐, 내 잘못이 아닌데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다 과친구들이다, 이제부터 사귀면 된다. 찾아서 데려와라, 걱정 마라 늦어도 조원들이 다 풀어오면 나머지 5점 준다고 대답했다. 옛날에는 쌤이 '다 어디 갔어? 가서 데려와!' 하고 소리 지르면, 한 애가 나가서 밖에서 모여 놀고있는 다른 애들을 우르르 데려왔지만, 요즘은 애들은 다 따로 놀아서, 데리러 나가도 한곳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간에, 진짜 애들이 과제를 들고 모두 다 나타났다, 그 깨알 같은 5점 때문에!!!

        오랜만에 진지한 애들을 앞에 두고 나는 간결하게 강의를 마친 후, 조별로 자리를 정해주고, 다같이 과제를 풀라고 했다. 처음에는 좀 어색해하더니, 바로 서로 묻고 대답하느라 떠들썩해지며, 질문이 터져 나왔다. 나는 '못한 애'와 '안 한 애'를 가르치는 '잘 한 애'와 '좀 틀린 애'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제대로 잘 가르치는지만 살폈다. 그렇게 두어 개의 과제가 더 지나가자, 아예 서로 만나서 공부했는지, 조별로 과제를 뭉쳐서 제출했다. 아무튼 나 홀로 '못한 애'와 '안 한 애'가 사라졌다.


        아무리 좋은 거라도 손에 직접 떨어지는 깨알 인센티브가 있어야, 사람이 움직인다.


        피피티 (ppt) 발표자료

        인센티브 (incentive) 성과에 대한 보상 또는 장려책

       


        글자를 한 개 수정하다가, 연필모양(편집)을 누른다는 것이 휴지통을 눌러서, 글이 몽땅 날아갔어요. 울면서 기억을 더듬어 처음부터 다시 썼어요. 살짝 달라졌을 수 있지만, 다행히 짧아서 거의 복구된 거 같긴 해요. 무서워요.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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