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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yaChoi Nov 17. 2023

수능과 공정의 역습

정상인이십니다요!

        올 수능 언어영역에 등장한 통계자료분석 지문이 너무 어려웠다는 기사에 눈길이 멈추며, 수능이 어쩌다 온 국민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하는 의문에 빠졌다.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한민국에서 웬만큼 정상인 취급받기 위해서, 초중고 12년 동안 치러야하는 수많은 시험 중 최고봉은 단연코 비행기 이착륙도 멈추는 수능이다. 수능이 금수저에게 유리하고 흙수저에게 불리하다는 여론도 있지만, 그나마 부모와 상관없이 본인의 머리와 노력으로 사회계층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라는 반론도 크다 보니, 늘 공정성 시비에 휘말린다. 시험 끝나자마자 문제와 답이 공개되면, 어휴 저걸 어떻게 푸나, 어휴 이상한 문제도 다 있네, 애들이 불쌍하다 등등 온갖 탄식과 비판이 쏟아지며, 틀린 문제나 오답이 하나라도 나오면 온 나라가 들썩인다.

          꽤 여러 해 전 수능이 막 끝나자마자, 아는 문과쌤이 전화로 퍼센트(%)를 물어왔다. '뭔가 2 퍼센트(%)에서 20 퍼센트(%)로 오를 때, 18 퍼센트(%) 증가했다'고 말하면 틀리냐고 물었다. 눈치 빠른 대한민국 사람이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겠지만, 수능 문제니까, 이과생 관점에서 퍼센트(%)는 비율이니까, 그냥 10배로 증가했다고 말하거나, 숫자가 너무 커서 말하기 애매하지만 900 퍼센트(%) 증가했다고 말한다고 대답했더니, 쌤이 살짝 당황했다.

      20/2= (비율)10로 증가

      100 x (20-2)% / 2% = (비율) 900 퍼센트(%) 증가

어떤 사람이 게시판에 18 퍼센트 포인트 (%p) 증가했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답이 틀렸다고 써서, 난리났다고 말했다.

     20% - 2% = (차이) 18 퍼센트 포인트 (%p) 증가

이 수능문제 난리 이후, 기사에서는 꼬박꼬박 퍼센트 포인트가 등장했다. 그래도 여전히 내 주변 정상인들은 몸무게가 70kg에서 75kg으로 바뀌면 5'키로' 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은행이자가 4%에서 5%로 오르면 그냥 1 '프로' 올랐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퍼센트를 단순히 단위로 생각해서 그냥 18 퍼센트 증가했다고 말해도 맞다.

     20%-2%= (차이)18 퍼센트 (%) 증가

          1년에 딱 한 번인 시험을 최고로 잘 치기 위해서, 학생뿐 아니라 온 가족이 모든 재산과 노력을 총동원한다. 또 보려면 눈물겨운 1년을 기다려야 하고, 시험 당일 배탈이라도 나면 인생의 희비가 엇갈린다. 온 국민이 문제와 답을 쳐다보며, 문제가 너무 어렵고 이상하다, 교과서에서 출제해라, 난이도를 잘 조절해라 아우성이지만, 온갖 정부가 이랬다 저랬다 아무리 바꿔도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자주 비교되는 미국 대학입학시험인 SAT나 영어시험인 토플, 토익은 문제를 공개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원점수 대신 조정된 점수를 공개하기 때문에, 오답 시비에 휘말릴 염려가 없다. 그러다 보니 오래 축적된 문제들의 정답률이 잘 표준화되어 재활용되기 때문에, 난이도 조절이 쉽고 이상한 문제가 등장하기 어려우며, 1년에 여러 번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수능은 모든 문제와 답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기출문제들이 문제은행으로 축적되거나 재활용될 수 없으며, 시험 때마다 새로 문제를 만드는 것 외에는 딴 방법이 없다. 시험마다 출제자가 바뀌고, 신이 아닌 출제자는 실력이 해마다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상대로 난이도를 '단 한 번'에 예측할 수 없으므로, 불수능 물수능 오류는 확률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험이 공정한 줄 알았지만, 만들 수 있는 문제들이 점점 줄어서, 우리는 줄거리를 벗어난 기이한 문제들과 출렁이는 운에 대한 억울함과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 그리고 개인적으로 쏟아붓는 소모적인 고비용의 역습을 마주하고 있다.


          투명하게 다 아는 게 힘인 줄 알았더니, 좀 모르는 게 약일 때도 많다.

                


* 2014년 수능 영어영역 퍼센트, 퍼센트 포인트 오류(?) 사건이 있었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사과하고 복수정답으로 처리했다. 이후부터 모든 기사에서 꼬박꼬박 퍼센트 포인트를 쓴다. 하지만, 퍼센트가 단위니까, 그냥 페센트만 써도 맞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50kg에서 55kg으로 증가하면, 5kg 늘었다고 단위를 붙여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 2023년 수능 언어영역 문제에 대한 간략한 배경 설명: 아래 그림에서처럼 두 변수의 관계를 나타내는 직선식을 찾을 때, 무리와 뚝 떨어진 이상치 (outlier)가 한 개만 있어도, 기울기가 확 달라진다. 대부분 자료분석과정에서는 이상치를 제거하고 직선식을 추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한번 해보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한번도 안해본 사람은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기 어렵다.


그림 1. 이상치가 있을 때와 없을 때, 크게 바뀌는 두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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