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배운 지 꽤 됐지만, 내가 봐도 남이 봐도 나는 잘 못 친다. 좀 재미 붙을 즈음에 된통 아픈 바람에 쉬었더니, 원래도 못쳤는데 더 못치게 됐다. 코치가 날더러 '공만 없으면 잘 쳐!' 하고 대놓고 말하고, 그걸 다 보고들은 탁구장 사람들이 덩달아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통에 기죽은 나는 장마철 물난리를 핑계로 딴 동네 탁구장으로 옮겼다.
뽀송한 새 탁구장에는 아는 얼굴이 없어서 마음 편히 동네 친구를 불러 한 번씩 치다가, 어느 날 혼자 탁구장에 갔더니 오랜만에 낯선 사람이 같이 치자 청했다. 기쁨 반 걱정 반으로 쭈뼛거리며 공을 받자마자, 첫 볼에서 내 엉성한 실력이 바로 들통나는 바람에 공이 열 번도 오가기 전에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냐고 추궁당했고, 옆 테이블에서 따악~딱~ 공치던 낯선 할배할매 둘이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땡탁구장에서 나를 봤다고 큰 소리로 말하여, 결국 탁구장 옮긴 보람도 없이 '만년 초보'라는 내 꼬리표가 좁은 탁구장 모두에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순식간에 시큰둥해진 아저씨는 사람들을 많이 가르쳐봐서 척 보면 안다,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라, 오른손을 더 밑에서부터 올려쳐라, 무릎을 이렇게 회전해라 하더니, 급기야 얼마나 배웠냐고 또 물었다. 내가 * 년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니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 달 배운 거 같다, 레슨비 환불받아라 해서,모두 웃었다. 덕분에 이전 탁구장에서 이미 온갖 말로 주눅들었던 내 마음이 더 찌그러졌다.
겨우 한 시간 만에 남들 종일 친 것처럼 땀에 젖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며, 내가 뭐 못 치고 싶어서 못 치나, 나도 잘 치고 싶지만, 내 몸도 쪼끄만 공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뿐이라며 혼자 투덜거리다가, 급기야 나도 참~ 못하고 못배운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좀 잘해서 자신감을 가져보려 했지만, 오는 공 쫓기도 바쁘고 게임규칙도 헷갈리고 몇 대 몇인지도 외울 수가 없다. 언감생심 게임은커녕, 랠리도 이 사람은 확 올려치라 하고, 저 사람은 쪼금 올려치라 하고, 이 사람은 서서 치라 학고, 저 사람은 숙여서 치라하니, 도무지 그들 세상의 말귀를 알아듣기 어렵다. 내가 내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가 어떻게 치고 있는지 나도 모르니까 그들 장단에 맞출 수 없다. 우습지만 자타공인 못 치는 내 눈으로도 무리들 중 고수를 골라낼 수 있다. 그리고 또 슬프지만 그중에서 제일 못치는 그 누군가도 나보다는 훨씬 잘 친다는 사실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진지한 나는 가끔 밤이면 까만 베란다 통유리창을 거울 삼아 공도 없이 스윙폼도 잡아보고, 사람들을 만나면 탁구인인지 확인하고 그들의 내공을 살핀다. 어느 날 헬쓰장에서 나보다 더 꼿꼿하게 온갖 어려운 동작을 해내시는 할매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분이 탁구인이란 걸 알게됐다. 15년 경력에 게임만 한다는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에, 와~ 놀라다나, 가만... 나도 저 연세가 되면 저분보다 더 탁구경력이 긴 할매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더 어린 나이에 시작했으니까! 물론, 내가 저분만큼 잘 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지금보다는 노련해질 거라는꽤 설득력있는 결론에 도달하고는,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나를 응원하며 혼자 웃었다.
뭐든 좋은 거는 한 살이라도 일찍 시작해서 꾸준히 계속하는 게 내 인생 최고의 전략이다.
*랠리(rally) 탁구ㆍ테니스ㆍ배드민턴ㆍ배구 따위에서, 양편의 타구가 계속 이어지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