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면 밥해먹고 출근하고, 해질 때까지 그럭저럭 일하고, 저녁에 뭔가 꿈지럭거리며 뛰굴거리다가, 한밤중에는 안 오는 잠 때문에 뒤척이는 그렇고 그런 비슷한 시간들이 나도 모르게 쌓여서, 어느 날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끙끙앓은 지 거의 3년만에 정신이 들었을 때, 남들 따라서 든 뒤에 한번도 써본 적이 없었던 보험을 한꺼번에 신청해서 꽤 큰 돈을 받았다. 어차피 내 돈으로 쓴 병원비를 돌려받은 거고 지금까지 통장에서 소리 없이 빠져나간 보험료보다한참모자랐지만, 없던 돈이 생긴 것처럼 감사하고기뻐하며 이 돈을 어디에 쓸까 한참 고민하다가, 몽땅 다 털어서 생전 처음으로 헬스장 PT를 끊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늘 돈 앞에 소심하지만, 거의 반 죽다가 살아난 터라, 누군가 샀다가 반품한다고 쎄일하는 PT 이용권을사고, 또 사고, 또 사고, 급기야 돈을 보태서 또 샀더니, 트레이너가 고맙다고 더 얹어줘서, 백 번 넘게 셀 수 없이 많아졌다. 하지만 넘치는 욕심과 달리 몸은 가장 작은 무게에도 아주 후들거렸고, 좀만 운동해도 여기저기 쑤시는 바람에 생각만큼 자주 PT를 받을 수 없었다. 과연 계약만료일까지 이 많은 PT를 다 채울 수 있을까, 왜 이리 많이 샀냐, 저 젊고 튼튼한 트레이너가 나이 많고 비실거리는 나를 이해하고 꾹 참고 운동을 잘 가르쳐줄까, 내 몸이 진짜 좋아질까 하는 온갖 생각으로뒤늦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내가 제일 잘하는 게 한 가지 있다, 못해도 또박또박하는 거! 트레이너는 수업이 끝날 때마다 재미있냐고 물었고, 운동이 재미있는 건지아니면 빠글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운동하는 시늉을 하는 게 위안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조건 재미있다고 대답하고는 밤마다 근육통에 뒤척였다. 무게를 한 칸만 늘려도 덜덜 떠는 나에게 엄살이 심하다, 너무 예민하다며 트레이너가 타박했지만 나는 꿋꿋하게 버티며 빠짐없이 출석하여 근력운동을 배웠고, 평소 운동을 즐겨하던 남편과 딸이신기해하며 내 재활을 지켜보다가 덩달아같이 배우고 싶어하는 바람에, 결국 내소중한 PT 사용권을 온 가족이 쓰게 됐다.
혼자 쓸 때는 저 칸을 언제 다 채우나 싶게 까마득하던 PT 횟수가 셋이 신나서 쓰니까 쑥쑥 줄어들어서, 오히려 이러다 내 거가 얼마나 남으려나 싶었다. 하지만, 같은 선생님한테 비슷한 걸 배우니까, 따라가고 서로 봐주고 가르쳐줘서 중력을 거슬러야 하는 근력운동이 훨씬 덜 부담스러웠다. 혼자 다닐 때는 뭘 배웠는지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서,트레이너가 엄청 답답해했는데,이제는 가족들이 서로 뭘 배웠냐고 물어주고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팁을주고받으며복습도 되니까, 더 잘 배운다. 그래서인지, 트레이너의 지적이 조금씩 줄고, 긴장했던 내 어깨가 내려오고, 삐딱하던 남편 등이 세워지고, 딸의 잔소리도 줄었고, 무엇보다 나는 정상인에 가까워지며 더 잘 돌아다니고 있다.
뉴스를 봐도, 브런치 글을 읽어도, 가까운 주변에도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많다. 바쁠수록 잘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하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다. 좀더 일찍 건강할 때 시작했더라면 안아팠을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있고,받을 일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보험금으로 시작됐지만,'가족이 다같이 규칙적으로 운동하니', 같은 주제로 웃으며 이야기하고, 같이 몸을 움직여서 밥도 더 잘 먹고, 잠도 더 잘 자고, 잡생각도 없어지며, 일이든 공부든 효율이 더 높아져서 좋다. 온 가족이 근육부자가 되려 애쓰며좀더 건강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