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eyaChoi Apr 20. 2024

또 평범한 하루

정상인이십니다요! 에필로그

        봄이 시작되는 거 같던 어느 출근길에 얼마 전 은퇴하신 분의 부고가 전해졌다. 처음 학교에 갔을 때, 식당에서 같이 밥먹을 사람이 없어서 뻘쭘하던 내게 먼저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스무해 넘게 같은 직장에 다니며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같이 논문도 쓰고, 저서 중 하나가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나도 그 책을 여기저기 선물했던 분이다. 때마다 먼저 인사 문자를 주셨고, 1월1일에 한번 한번 먼저 안부를 물어주셔서, 무슨 새해 인사를 두번이나 하시나 싶었다. 나중에 전해들으니, 여전히 활기차고 평범한 일상을 마친 뒤 샤워하고 소파에서 쉬다가 정신을 잃고,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수업을 하고, 먹고 자고 하던 운동 그냥 하고, 비슷비슷한 축구 하이라이트를 찾아보고, 그리고 딱히 무슨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생각을 것도 아닌 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저녁, 식당에서 학생 명이랑 같이 밥먹는데 낯익은 사람 둘이 반갑게 옆에 따라와서 앉았다. 누구더라 생각하며 잠시 당황하다가, '너 이거 먹을래?' 하고 그날따라 커다랗던 돈까스를 나눠주려고 물어보니까, '저는 괜찮은데, 고교수님은 드실지도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보니, 이번 학기에 새로 온 파릇한 쌤들이었다. 나는 '아 저런...... 학생인 알고요......' 하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잠시 당황스러움을 수습한 뒤 수없이 사과했고, 맨투맨 티를 입은 젊디젊은 쌤은 '괜찮아요, 학생처럼 봐주셔서 기분좋아요' 하고 한참 웃었다. 회의에서 한번 보고, 식당에서 한번 봤는데, 금붕어처럼 그새 까먹었다.

        간신히 일을 마무리하고 어둑한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켜는데, 차에 기름이 없고, 온갖 경고등이 들어오면서 시동이 안켜졌다. 그러고 보니 차가 뜨끈했다. 보험사에 전화해서 견인차가 왔고, 기사가 보더니 시동을 안끈 같다고 했다. 하루 종일 차에 시동이 켜져있어서, 기름이 다 없어졌던 거였다. 아침에 차 시동을 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내 말에, 기사는 어떻게 그게 기억이 안나냐고 물었다. 가까운 주유소로 차를 끌고 가서 기름을 넣고 마음이 좀 가라앉고나니까, 그제사 아침에 오랜만에 옆자리에 탄 옆방 쌤의 수다에 시동 끄는 걸 잊어버렸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 날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과제 프린트를 못받았다길래 가방을 뒤적이다가 종이를 꺼내줬는데, 나중에 보니 며칠 뒤에 볼 시험지였다. 애는 벌써 갔고, 다행히 한 장이었고, 할 수 없이 한참 앉아서 다시 문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죽은 듯이 긴~ 잠을 잤다.

        매일 또 오고 또 올 것 같은 그렇고 그런 하루가 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달 넘게 나갔던 넋이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집 앞에 철쭉이 만개했고, 빗나가기만 하던  탁구공이 다시 맞기 시작했으며, 도무지 진척이 없던 아폴로 석고상의 명암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옆에서 답답해하던 선생님이 드디어 끝이 보인다고 말했다. 가신 분은 가신 분이고, 살아있는 내게는 그렇게 산만하지만 평범한 하루가 또 왔다.


        정상이고 비정상이고 상관없이, 살아서 맞이하는 또 평범한 하루가 소중하다.     


        정상인입니다요! 시리즈를 마칩니다.

 

작가의 이전글 규정과 융통성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