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기자 일본 표류기
2019년 6월 30일 이른 아침 빗소리에 잠이 깼다. 창유리에 물무늬가 반복해서 번지고 있었다. 창밖 도쿄 시내가 흐릿해 보였다. 3년간의 특파원 생활을 마치는 날에 하필 비가 오다니. “하늘도 이별을 슬퍼하다” 따위의 위선적인 감상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새벽부터 여행용 가방 3개에 남은 짐을 욱여넣었다. 작은 아파트 방을 거듭해서 쓸고 닦았다. 못 하나 박지 않고 조심스럽게 살았지만 생활 흔적이 남지 않을 리 없었다.
아침 일찍 아파트 관리회사의 퇴거 검사를 받았다. 조카뻘쯤 돼 보이는 여직원이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으로 집안 곳곳을 점검해 나갔다. 부담스럽게 친절한 억양으로 특별히 수선해야 할 특이 사항은 없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아파트 보증금은 대략 한 달 이내에 등록 계좌로 반환된다고 했다. 나중에 별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약간의 청소비만 청구한다고 했다. 두 달 치 임대료에 해당하는 보증금은 회사 돈이 아니라 내 돈이었다. 집주인 측에서 엄격하게 꼬투리를 잡으면 고스란히 날릴 수 있다. 도쿄 거주 외국인들 사이에는 집주인을 잘못 만나면 임대료 전액을 떼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내가 머물던 아파트는 개인 소유가 아니라 부동산 회사 소유였다. 부동산 회사는 개인에 비해 무리한 요구를 잘하지 않는다는 일본 지인의 말이 위로가 됐다.
현관 열쇠, 기계식 주차장 카드키, 무료 순환버스 카드 따위를 반납하고 출입구 로비로 짐을 뺐다. 공항행 버스가 출발하는 호텔까지 가려면 100 미터 가량을 걸어야 했다. 마지막 짐은 큰 가방 두 개와 작은 가방 한 개. 우산까지 들기엔 손이 모자랐다.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싶을 때 가방 둘을 끌고 가방 하나를 메고 집 앞 공원으로 나섰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 호텔까지 20미터는 단축할 수 있었다. 나무들이 비에 젖어 파릇파릇 힘을 더해가고 있었다.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종종 어슬렁대던 길고양이 두 마리도 고양이에 밥을 주던 캣맘도 보이지 않았다. 노란색 비옷을 입은 갈색 푸들 한 마리가 주인을 따라 잔디밭을 걷고 있었다. 거의 매일 산보하던 공원의 마지막 모습은 그렇게 사진처럼 기억에 남았다.
호텔에서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공항버스에 혼자 올랐다. 도쿄지국장을 포함해 3년간의 특파원 생활을 마감하는 귀국길은 호젓했다. 아내는 며칠 일찍 귀국했고, 배웅해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전임 지국장이 출국할 때 공항까지 차량으로 배웅해 주었지만, 이번에 는 나 혼자였다. 평일 근무시간이라면 어차피 근무의 연장이려니 하고 겸사겸사 지국 사무실에서 누군가 나섰을 것이다. 주말에 누가 제 시간 버려가면서 한물간 지국장 배웅을 하고 싶을까 싶었다. 차량 제공은 몰라도 공항에는 누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때마침이었다고 해야 할까? 공교롭게도라고 해야 할까? 한국의 서울 본사 요구에 따라 지국은 바쁜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지국장 출국이 귀찮은 행사로 여겼다면 그들에게는 정말 ‘때마침’이었을 것이다. 사무실의 현지 직원들에게 적지 않은 사비를 털어 전별금을 주고 나온 터라, 잠시 서운함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내 잡념을 털어냈다. 뭔가 받을 것을 기대하고 한 일은 아닌 터였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뿐이고,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뿐이다.
이미 익숙해진 출국수속을 익숙하게 마치고 항공기에 올랐다. 좌석은 항공기 뒤쪽 복도 옆이었다. 첫 여행 때처럼 도쿄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감탄할 일도 없었고, 서울 야경을 보며 가슴 뭉클할 일도 없었다. 잠깐 졸다가 무미건조한 기내식을 경건하게 챙겨 먹고 커피 한 작 마시고 잠시 눈감았다 뜨면 서울 상공에 떠 있을 것이다. 기내 좌석 찾기의 어수선함이 정리되고 승무원들이 좌석 머리 위 짐칸이 제대로 닫혔나 확인하고 안전 관련 사항을 안내하고 잠시 뒤 항공기가 이륙했다. 도란도란 들뜬 말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눈을 감았다. 해외 몇 년 살다 온 특파원들이 흔히 그러하듯 책이나 한 권 써 볼까? 주변의 말소리가 커졌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가 섞여 들렸다. 낯선 억양의 영어, 독일어, 그리고 저것은 스페인어일까? 다시 눈을 감았다. 특파원으로 일하다 귀국할 때면 이런저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것처럼 자기 최면에 빠지기 쉽다. 취재 노트와 현지 언론 보도를 적당히 각색해서 근사한 연구 서적처럼 발표할 유혹에 빠지기 쉽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엄청난 경험도 아니면서 마치 나라를 구한 경험을 한 것처럼 장황한 경험담을 늘어놓을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 나라 관련 전문가가 된 것처럼 우쭐해서 귀국하기 쉽다. 우습지 아니한가. 불과 3년 만에 일본 전문가가 된 듯 나대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여름·가을·겨울·봄이 불과 세 번 지나갔을 뿐이다.
등을 무엇에든 기대기만 해도 쉽게 잠이 드는 체질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도쿄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다. 마치 시간이 따로 흐르는 듯 모든 것이 재연 화면처럼 느리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귀국하자마자 남들처럼 책이라도 한 권 써서 우쭐대볼까 하는 생각은 이내 접었다. 아마도 그것은 자기 허세였을 것이다. 해외 근무는 감사의 시간이지 우쭐대는 자만의 시간이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사요나라, 도쿄” 결국 이 한 마디로 나는 도쿄에서의 기억을 당분간 지우기로 했다. 아니,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귀국 이후 3년이 지나서야, 건방지게 들뜨지 않은 마음으로 일본 생활의 기억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