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몰라도 일본 특파원

별들의 전쟁터에서 얼떨결에 별이 되다

by 나신하

“일본어는 좀 하냐?”

“영어는 좀 합니다.”

일본 특파원으로 선발된 뒤 방송사 사장과 나눈 대화이다. 당연한 질문에 뜬금없는 답변이었다. 사장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씩 웃었다. 당시 사장은 훗날 정권교체 뒤 적폐로 몰려 쫓겨난 고대영 사장이다. 언론관과 삶의 가치관은 대척점에 있었지만, 사석에서는 그냥 편하게 말을 주고받는 기자 선후배 관계였다. 함께 배석한 직원들은 내가 사장과 격의 없는 농담을 나눌 만큼 친했었나 하며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사실 그때까지도 내가 아는 일본어라고는 ‘아리가또(감사)’와 ‘스미마셍(미안합니다)’이 전부였다. 나는 거짓말을 한 것도, 농담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일본어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일본 특파원이 될 수 있었을까? 친분 있는 목사님 얘기대로라면 하나님의 축복 혹은 선한 목적 덕분이라고나 할까. 내가 유능하고 똑똑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다. 누군가의 말처럼 평생 운을 한꺼번에 몰아서 썼던 것 같다. 그것이 적금이었는지 가불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잘났기 때문’이라는 특파원들 특유의 오만함을 연출할 만큼 내 낯은 두껍지 않다.

언론사, 특히 방송사 특파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이 필요하다. 특파원은 선별된 소수만이 누리는 혜택이다. 경험자들이 말로는 생고생이라고 고개를 젓지만 실제로는 서로 가기 위해서 이전투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특파원이다. 낯선 이국 생활은 고생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월급 받아 가며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큰 특혜이다. 영미권은 영미권대로, 비영미권은 비영미권대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유무형의 혜택이 따라온다. 배우자에게는 당연하고 자녀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특파원 주재국의 외국인 대상 사립학교 학비는 엄청 비싸지만, 학비 대부분을 회사에서 지원한다. 자녀의 대학 특례 입학 자격이 걸려 있을 때는 지원자들끼리 살벌한 선발 경쟁이 벌어진다. 국내 학교에서 부적응 중인 자식을 해외 학교에서 교육시키기 위해서 특파원으로 나가야 한다고 읍소한 선배는 실제로 특파원으로 선발됐다. 또래 자식을 가진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인기가 높은 영미권 국가 특파원 선정 과정은 ‘별들의 전쟁’이라고 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궁금하실 것이다. 특파원 응모자들은 저마다 강력한 사내 권력자 누군가를 후견인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아무개 지원자는 아무개 간부가 밀고, 또 다른 아무개는 또 다른 아무개를 민다더라’, ‘아무개는 누구 라인, 아무개는 누구 라인이라더라’, ‘아무개 라인과 아무개 라인이 지역을 나눠서 서로 밀어주기로 했다더라’, 따위의 소문이 돈다. 심사위원회는 요식 절차일 뿐 실제로는 ‘어느 나라에는 아무개 어느 나라에는 아무개가 내정됐다더라’ 따위의 소문이 된다. 소문은 맞을 때도 있고 안 맞을 때도 있다. 소문이 얼마나 현실화되는지 비율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아직도 위세 등등한 당사자들이 나를 죽이려들 지도 모르겠다. 그냥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이라고만 해두자.

진작부터 특파원을 향한 욕망에 들떠 있는 기자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경력과 인맥 관리에 목을 맨다. 특파원 심사 권한이 있거나 있을 것 같은 간부들의 말은 신의 명령처럼 따른다. 심지어 그 간부가 기뻐할 만한 일을 자발적으로 앞장서서 한다. ‘아니 저런 일까지?’ 하는 종류의 일도 진심으로 기쁘게 수행한다. 단기 해외 출장 때마다, 아무리 일정이 촉박해도 값진 양주 따위를 꼬박꼬박 사다가 선물하는 기자가 있었다. 그는 결국 원하는 지역 특파원으로 선정됐다. 물론 그 기자는 일도 잘하고 성실했다. 물론 극소수 역할을 제외하면 기자 일 대부분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무난히 할 수 있다. 업무 성과도 다 거기서 거기다. 기회를 부여받느냐 못 받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회를 받고 못 받고 차이는 윗사람의 주관적 평가에 좌우되기 쉽다. “걔는 그냥 싫어” 특정 후배를 유난히 못살게 구는 간부가 술자리에서 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특파원에 목맨 기자들이 마땅히 취해야 할 보편적 자세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입사 직후부터 돋보이려고 몸부림치는 후배 기자가 있었다. 자신은 꼭 앵커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기분 나쁠 만큼 영특하고 영악한 인물 됨됨이였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나가는 말로 왜 앵커가 되고 싶냐고 했다. ‘내 목소리로 뉴스를 전하고 싶다’, ‘유명해져서 정치하고 싶다’ 따위의 예상 답변이 아니라 전혀 상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특파원 나가고 싶어요. 앵커를 해야 특파원 쉽게 나간다면서요.”

실제로 특파원 상당수는 앵커 출신이다. 특히 미주 특파원은 더더욱 그렇다. 아, 젊은 기자들이 보기에는 앵커가 특파원행 열차 승차권쯤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랫동안 각고의 노력을 했다.” “열심히 일했더니 특파원이 됐다.”

특파원 경험자들은 으레 이런 말을 했다. 그중에는 “운이 좋았다”는 말을 양념처럼 덧붙이는 인간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거드는 말이고 태도의 우쭐댐을 숨기지는 못했다. 사실인 듯 사실 아닌 사실 같은 이야기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력만으로는 갈 수 없는 것이 특파원이라는 고정관념은 입사 초기부터 전염병처럼 회사 내에 번져 있었다.

해마다 특파원 선정 절차가 끝나면 보도본부는 몸살을 앓았다. 이번엔 아무개 라인이 또 다른 아무개 라인을 제쳤다더라 등등의 소문이 돌았다. 승자는 우쭐댔고 패자는 낙담했다. 경쟁자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해 준 사례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유력 경쟁자들끼리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거나 탈락자가 업무를 거부한다는 소문도 드물지 않았다. 일반적 예상을 뒤엎은 경우, 이를테면 연공서열을 무시한 채 까마득한 선배를 제치고 특파원에 선정되면 조직에서 따돌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막강한 ‘백’이 작용해서 관행을 무시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일본 특파원을 공공연히 희망하다 프랑스 특파원을 다녀온 선배의 농담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아무리 실력 있어도 노력하는 놈은 못 당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백 좋은 놈은 못 당한다. 아무리 백이 좋아도 운 좋은 놈은 못 당한다.”

여기서 ‘백’은 무엇이고, ‘운’은 무엇일까. 저마다 나름대로의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최소 8년 이상을 문제아로 낙인찍힌 채 한직과 한직 언저리를 맴돌았던 나는 도대체 어떻게 특파원이 된 것일까. 게다가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놈이 일본 특파원이라니. 아니,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놈이 일본 특파원을 지원

시작부터 운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운이라는 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특파원 선발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널뛰기를 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다. 외국어 구사 능력이 평가 점수에 일정 부분 반영된다는 것이다. 지원자들은 모두 외부 전문기관에서 영어 또는 해당국 언어로 면접시험을 치러야 했다. 몇 점 이상만 합격, 또는 몇 점 아래는 불합격 따위의 기준은 공개되지 않았다. 외국어 암기에 은사를 받은 기자들은 외국어로 모범 답안을 좔좔 외워서 대응했다. 최소한 현지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외국어 구사 능력은 필수였다. 공인기관 시험점수는 가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실제 회화 시험을 피해 갈 방법은 없었다.

내가 특파원에 지원할 무렵이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선발 절차에서 외국어 능력 시험이 갑자기 삭제됐다. 공인기관 시험 점수도 필요 없었다. 회화 능력도 필요 없었다. 취재·제작 능력과 회사 기여도로 평가하겠단다.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회사 내 최고존엄의 총애를 받는, 그러나 외국어 능력은 심히 부족한 아무개를 특파원으로 보내기 위해서 꼼수가 동원됐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닐 것이다,라고 공식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배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ㄱ’나 ‘ㅅ’나 응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외국어 능력이 부족해서 사실상 포기 상태였거나 관심이 없던 기자들이 대거 지원했다. 경쟁률이 치솟았다. 미국 특파원 쪽은 그야말로 스타워스의 확장판 같은 전쟁이 벌어졌다. 경쟁률이 2대 1, 3대 1 수준에 머물던 지역도 비선호 지역도 지원자들이 급증했다. 일본어 능력자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일본 지역도 경쟁률이 7대 1 정도였다고 한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선 맞보기용으로 일본 지역에 원서를 냈다. 담당 부서에 메일로 보내면 되니까, ‘어차피 안될 텐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따위의 눈총을 받을 일도 없었다. 직속 상급자나 부서장에게 특파원 지원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통상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심사를 맡은 간부들에게 인사를 다니는 기자도 있었고 자기 부서원을 잘 부탁한다고 인사 다니는 간부도 있었다. 나는 그냥 지원서만 내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특파원 선정 절차가 한창일 때 기념비적인 서명 문건이 돌았다. 수뇌부와 대립해 온 기자협회 집행부를 공격하는 문건에 서명하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사실상 친위 쿠데타 같은 성명서였다. 까마득한 선배들부터 보도국장, 현직 부장 및 주요 출입처 팀장 등등 백여 명이 가세했다. 훗날, 당시 고대영 사장을 탄핵하는데 앞장섰던 간부들 상당수가 이때도 서명란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대략 10초 정도 고민하다가 서명하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여기 서명하면 특파원 보내 줄게” 따위의 회유가 들어왔다면 심각히 고민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회사에서 외톨이였다. 그런데, 워낙 낙인이 세게 찍혔던 것일까? 그냥 서명하라는 강권만 있었는데, 마치 “대세은 기울었다”는 선전포고 같았다. 서명 안 하면 너만 손해라는 강압적 분위기에서 서명을 한다고 내게 돌아올 현실적 이익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최고 권력에 줄 선 기자 무리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서명은 거부했다. 1% 정도 남아 있던 특파원의 가능성은 마이너스로 내려간 것 같았다. 마이너스라 함은 향후 몇 년간 낙인 계속될 것임을 뜻한다.

그런데 특파원으로 덜컥 선정돼 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배경을 수소문해 봤다. 사장 비서실에 있는 선배의 말로는 사장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도본부장이 고심 끝에 심사위원회 평가 점수가 제일 좋은 편이었던 나를 선정했다고 한다. 모욕적인 뒷말도 들었다. “끼워 팔기용이다.” 무슨 뜻일까? 다른 지역 특파원에 사측이 총애하는 기자들, 친위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기자들을 낙점하기 위해, 비선호부서에 상징적으로 나를 낙점했다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그 뒷말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특파원 선발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아내에게 전하자마자 걱정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일본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제로에 가까웠던 상황에서 앞이 캄캄했다. 허허, 이것을 어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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