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일본 적응기
도쿄 특파원 부임까지 약 석 달이 주어졌다. 한 달은 현 부서에서 평소와 똑같은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두 달 전 국제부로 옮겨준 뒤에야 준비에 시간을 낼 수 있다. 그동안 비자, 주거, 언어 따위의 일을 모두 처리해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은 장기체류 비자.
주한 일본대사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난수표 같은 비자 신청서류 양식을 내려받았다. 늪에 빠진 것 같았지만, 더듬더듬 한 땀 한 땀 작성해 나갔다. 신청서에 더해 재직증명서, 일본 파견 근거 서류 따위를 준비해 광화문 앞 일본 대사관을 찾아갔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로 익숙한 장소였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는 처음이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거부해 온 일본 정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특파원 경험자들의 괴기 체험 같은 경험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미국 대사관 방문했을 때 위압감 가득했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서류 보완을 위해 두세 번 헛걸음할 각오였다. 한 시간 남짓 기다려 서류를 창구에 내밀었다. 유리창 너머 여성 담당자가 쭉 훑어보더니 “됐습니다. 하루 이틀 걸릴 겁니다.”라고 했다. 미국 대사관보다 훨씬 친절한 말투와 태도에 잠깐 놀랐다. 대사관 건물 앞의 소녀상 앞에서 상념에 젖은 채 한참을 서성거렸다. 일본에 대한 태도와 일본 정부에 대한 태도는 구분 짓자고 되뇌었다. 선택된 자의 들뜸과 미안함과 자기 합리화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 상태였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업무처리에 정신없을 무렵, 공공기관 업무 종료 시각을 임박해서 일본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 비자 신청 접수창구 담당 직원이 서류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 그렇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직장 일 때문에 당장 내일은 방문이 어려운데, 최대한 서둘러 보겠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쭉 빠진 채 공손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 명랑한 어투의 질문이 이어졌다.
“당장 재방문이 어려우시면, 제가 이렇게 저렇게 보완해서 처리해도 될까요?”
어,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아이고, 그렇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지요”.
“그러면, 제가 이렇게 저렇게 보완해서 서류 넘기겠습니다. 하루 이틀이면 결과 회신이 갈 테니까, 그때 신분증 갖고 오셔서 여권 찾아가시면 됩니다.”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붙들고 몇 번이나 허공에 인사했다.
뽑기 운이 좋아서 예외적인 친절함의 혜택을 받은 것인지, 그 직원이 원래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는지, 일본대사관이 전반적으로 친절한 것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분명한 것은 그때까지 그리고 그때 이후에도 한국의 관공서에서 그러한 친절함과 만난 적은 없다.
두 번째 관문은 언어 문제. 이것은 행운이나 노력으로 단시간에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이른바 생존 일본어라도 빨리 습득해야 했다. 집 인근 외국어 학원에서 일본인 강사가 진행하는 1:1 개인 강좌를 선택했다. 수강료는 비쌌다. 두 달 배우면 일본어가 어느 정도 가능하냐는 질문에 ‘상점에서 물건 살 정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쉽게 말하면 그냥 여행 일본어 수준이라는 것. 학습 속도가 빠르니 괜찮다는 착각은 첫날 깨졌다.
알파벳에 해당하는 ‘히라가나, 가타카나’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함무라비 법전 같은 부호 하나 외우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근무 중 짬이 나도 교재를 꺼내 놓기가 무서웠다. “특파원 준비하냐?” 오가는 동료들이 묘한 억양으로 던지는 말이 비수 같았다. 공교롭게도 감기에 걸렸다. 약 먹고 몽롱한 상태에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왔다. 속으로 엉엉 울며 더듬더듬 단어를 배우고 짧은 문장을 배워 나갔다. 학습 속도는 멀미약 먹은 거북이 같았다.
우리말로 대응해 표현하자면 ‘가갸거겨’부터 시작한 일본어였다. 악몽 같은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넘어서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배우고, 문장을 외우고, 문답연습을 반복해 나갔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배가 농담 삼아 그런 말을 했다. 술집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일본 여성에게 “당신 예뻐요(카와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당신 무서워요(코와이...)”라고 말했다고. 그 여성, 잠시 당황하더니 깔깔깔 웃더라고.
일본에 대해서 나름 잘 아는 후배가 이런 농담을 했다. 자기 지인이 일본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니홍고(일본어) 데키마셍(못해요)”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니홍고(일본어) 타베마셍(안 먹어요)”이라고 했다고. 공감의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때 나는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웃음을 위해 약간의 조미료가 첨가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웃음과 슬픔과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경험했다.
훗날 일본에 체류하면서, 위 얘기와 비슷한 경험을 일상적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일본어 조금 할 줄 안다고 깝죽대다가 터무니없는 실언을 내가 하거나 남이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반복됐다. 웃으면서 교정해 주는 일본인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색하게 그냥 씩 웃으면서 “소데스카?(그런가요?) 하고 넘어갔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중에야 알았다. 어휘 실수는 단순히 발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기억력과 집중력의 문제라는 것을. 언어 천재도 아니면서 외국어를 속성 습득할 수 있다는 기대는 허황된 꿈이라는 것을.
‘니홍고 타베마셍’에 대한 후일담 하나.
좀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일본 특파원으로 갓 부임한 후배에게 ‘니홍고 타베라셍’에 얽힌 농담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떤 한국사람이 일본에서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는데 일본어를 모른다고 하면 봐 줄 줄 알고 “니홍고 타베마셍”이라고 말했다고 말했더니, 그 후배는 너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적절한 임기응변 표현이었다는 듯이.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예 말뜻을 이해 못 했던 것 같다. 그 후배는 훗날에도 웬만하면 영어를 썼고, 일본어를 10초 이상 말하는 것은 듣지 못했다. 아마도 나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은 일본어 문맹자였던 것 같다.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일본 특파원이 될 수 있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아니면 말고.
지금도 ‘타베마셍’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혼자 씩 웃는다. 맞다. 일본어는 먹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