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은 로또처럼
특파원 선발 1년쯤 전이었을까. 그해 봄은 시작부터 우울했다. 회사는 어수선했다. 나는 한직을 전전하며 겉돌았다. 회사는 데스크라는 비공식 호칭을 달아 줬다. 하는 일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회사 수뇌부는 나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승진도 승급도 해외 연수도 아득히 멀리 있었다. 동기는 물론 후배들이 각종 보직을 맡아 승승장구했지만, 나는 1년짜리 해외연수 기회에서도 십여 번을 미끄러졌다. 회사 심사는커녕 보도본부의 문턱을 넘는 것조차 버거웠다. 젊은 시절에는 승진 대상이 된 지 2년 만에 선배들과 더불어 승진하기를 반복했지만,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기자로서의 삶이 요동치며 어긋나기 시작했다. 권력이 혈안이 돼서 정연주 당시 사장을 축출하기 위해 광분할 때,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 시발점이었던 것 같다. 정 사장 당시 혜택다운 혜택을 누린 기억이 없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는 신념으로 사내 게시판에 의견을 자주 올린 것을 수뇌부가 못마땅해한다고 동료가 귀띔을 해줬다. ‘운동권 중간 보스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반체제 우두머리의 멍청한 들러리’라는 조롱으로 들렸다. 정작 과거의 ‘운동권 으뜸 보스’들은 그 무렵 말단 보직이나마 하나둘씩 차지하고 무탈하게 살았다. 자리를 놓고 수뇌부와 협상이 오갔다는 뒷말이 돌았다. 실제로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어떤 교감이 오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어느 편에 서든 머리가 되지 않으면 개털일 뿐이라고 입버릇처럼 반복하던 선배가 있었다. 과장은 됐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낙엽이 지면 가을이고, 눈이 오면 겨울이고, 벚꽃이 피면 봄이었다. 몰입의 동기를 잃어버린 회사일은 오히려 쉬웠다. 하늘을 쳐다보거나 땅을 쳐다보거나 그렇고 그렇게 시간을 낚았다.
그날도 집 발코니에 앉아 구름을 세고 있었다. 2016년 4월 초 월요일 아니면 화요일 한낮이었을 것이다. 오후 출근 시간까지는 항상 여유가 있었다. 휴대전화 진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장 비서실 요직에서 일하는 선배의 이름이 떴다. 특별히 왕래가 있는 사이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싶어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특파원님, 축하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한 축하 인사말이었다.
“예? 무슨? 아!”
더듬거리며 간단히 대답했지만, 머릿속은 매우 복잡하게 과거를 복기하고 있었다. 한 달쯤 전에 일본 도쿄 특파원 지원서를 냈지만, 기대는 전혀 안 하고 있던 터였다. 특파원은 취재 제작 방송 능력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결정적 변수라고 믿던 터였다. 심사 기준으로 공표한 제작능력 회사 기여도 따위는 형식적인 변수에 불과했고 연줄과 충성심이 그 무엇인가의 핵심 요소라고 믿던 터였다. 당시 나에게는 둘 다 없었다. 고위층 줄을 잡은 듯 자가발전으로 떠들고 다닐 철면피도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사내 권력집단과의 불화는 숙명처럼 여겼다. 기쁘기도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무척 궁금했다. 당시 회사는 줄 세우기 바람이 거셌고 특히 보도본부에는 충성서약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집단 성명서가 나돌았다. 수뇌부에 충성을 공개 서약하다시피 한 처세술의 달인들이 즐비했을 텐데 왜 하필 나처럼 고집불통으로 소문난 사람을 특파원으로 선발했을까. 도쿄의 다른 언론사 특파원들 사이에도 그 점이 잠시 화제가 됐다고 한다.
규정상, 특파원 내정자는 일정 기간 사전 연수를 다녀올 수 있었다. 동반 가족 한 명의 왕복 항공권과 숙박비까지 제공한다. 그런데, 사전 연수라고 하니까 너무 막연했다. 주택 임차, 행정관청 등록, 어학연수 따위의 과제 제목만 알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회사가 특파원 내정자들에게 개괄적인 설명을 해줬지만 내게는 별 도움이 안 됐다. 다른 사람은 큰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 특파원을 다녀온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상상외 답변부터 돌아왔다.
“담당 부장이나 데스크가 아무리 눈치를 줘도 연수 기간은 규정된 기간만큼 챙겨라.”
이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 말인즉슨 "소속 부서장이나 간부는 직원이 어떤 명목으로든 장시간 자리를 비우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사규니 규정이니 무시하고 연수 기간을 최대한 줄이라고 대놓고 압력을 준다. 나도 그런 압력을 받았는데, 그냥 무시하고 필요한 만큼 다녀왔다."는 것. 부연 설명을 요약하면 그랬다. 설마 그렇게 궁색하게 굴까 싶었는데, 정말 그랬다.
국제부로 발령이 나고, 규정상 최대치가 아니라 나름 꼭 필요한 기간만큼만 계산해서 해외 출장 결재를 올렸다. 담당 국제부장이 대뜸 한마디 툭 던졌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인공지능 같은 저세상 어투였다.
“꼭 이렇게 길게 다녀와야 하냐?”
어차피 특파원 내정자들은 국제부 정원 외 잉여 인력인데 그는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표정을 힐끗 보았더니 농담이 아니라 못마땅함이 가득 담겨 있다. 그는 왜 그렇게 속이 비비 꼬여 있었을까. 내가 특파원으로 선정됐을 때부터 특파원 담당 부서장으로서 진심 어린 축하 인사 한마디 안 했음을 떠올렸다. 그의 평소 말투가 그 지경이었는지도 모른다. 밉지는 않지만 달가운 존재도 아닌 애매한 인간으로 눈칫밥 먹으며 10년 가까이 지냈더니 이래저래 잡생각이 많아졌다. 이런 몰상식, 아니 탈상식의 반응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갑자기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몇 가지 선택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이것은 너무 직설적이다.
“내가 특파원으로 뽑힌 게 그렇게 기분 나빠요?” 이것은 싸우자는 것이고.
“예, 그러면 좀 많이 줄일게요” 이것은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며칠을 원하십니까?” 이것은 역설적으로 그냥 엿 먹이는 것이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결국 답변은,
“도쿄 시내에서 집 구하기 정말 어려워요. 계약하려면 보통 3~4주 걸려요” 사실이었다. 한국처럼 집주인과 세입자가 만나서 대충 가격 맞춰 계약서 쓰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외국인 세입자는 철저히 ‘을’의 입장이었다. 집주인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도쿄의 주택 임대차 관행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다.
부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결재를 내줬다. 그때 그 국제부장, 본인이 직접 특파원 지원해서 특파원으로 선발됐다. 이런저런 뒷말이 돌았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아니,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본인의 사전 연수는 기간 넉넉히 잘 다녀왔다는 후문이다. 직접 확인까지 해본 것은 아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문득 궁금해진다. 그 부장은 나한테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