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주는 단어의 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그전에 어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어른이라는 단어를 접했던 때가 떠오른다. 아주 어릴 적,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시절 나에게 어른이란 나의 부모님이었고, 주위 선생님이나 친척들 등등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막연히 어른을 무서워하기도, 동시에 동경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나도 학생이라는 신분을 벗어나 성인이 된다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까? 어른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저 스무 살이 되어 학교를 졸업하면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부모님과 학교의 보호 아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행동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 제한된 용돈으로 군것질을 하는 것 대신 언제든지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맛있는 것을 척척 사 먹을 수 있는 어른. 술 한 잔을 마시고 '캬'를 외칠 수 있는 어른. 억지로 학원에 가거나 야자를 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
그때의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근사한 일로 비추어졌다.
엄청난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그런 환상이 있었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되었다. 드디어 술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과 성인이 된 첫 해, 1월을 맞이하여 동네 술집에 갔다. 아직 풋내도 벗어던지지 못한 세 명이 테이블에 쪼르르 앉아 처음으로 소주를 마셔 보고, 이런 걸 대체 왜 먹냐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래도 좋았다. 어른이 된 기분이었으니까.
이제 나도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어른이구나! 신난다!
대학에 입학을 했다. 말로만 듣던 OT에 참여해 보고, 시간표도 능동적으로 짜 보고, 강의도 듣고. 새내기 시절 대학 생활을 하면서 왜인지 모르게 스스로가 아직 고등학생 같다는 생각을 벗어던지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뭐,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보다 늦긴 했어도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요즘이 되어서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어엿한 어른이 되었는가? 30대 초반에게 사회가 기대하는 그 모습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
지금은 글쎄, 어른이 되고 싶기도 되고 싶지 않기도 한, 아리송한 한 명의 인간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마냥 어른이 되기를 바랐던 해맑은 내가 있고, 더는 스스로를 어른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은 내가 있었다. 이런 모순은 이전에도 얼핏 느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어머니와 작은 마찰이 있었을 때 '나는 이제 어른인데 왜 자꾸 간섭하려고 하냐'의 입장이었다가 때로는 '나는 아직 온전히 독립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왜 자꾸 등을 떠미냐'는 모순되고 철없던 시절의 내가 있다.
속으로는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필요할 때는 어른의 입장을 취하고, 불리할 때는 아이의 입장을 취하고 싶던 예전의 내가 있었다.
어른. 그토록 되고 싶던 어른의 겉모습을 하고 있는 내가 왜 지금 시점에 와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있는 걸까. 스스로 '진정한 어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우선 어른의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어른이란 무엇일까? 이제 어느덧 30대가 된 나는 단순히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된다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인 것 같다.
어른은 어쩌면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잘 보살필 줄 아는 사람. '나'라는 인간으로 태어나 나의 습성을 잘 파악하고, 그 존재를 잘 어르고 달래어서 하나의 인생을 저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사람.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숱한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것에서부터 발생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막연히 해 보았던 것 같다. 스스로를 잘 파악하고 있다 하더라도 인생이 주는 무게가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은 같은 문제를 맞이하더라도 조금 더 자기 자신을 위한 현명한 방법으로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어릴 적 나에게 어른이라는 것은 엄청난 자유와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어른이라는 건 자유보다는 책임에 더 가까운 말이라는 것을.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해마다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라는 말에 담긴 무게를 깨닫게 되며 어느 순간부터 그 타이틀을 기피하고 싶어졌다. 나는 내가 아직 20대 중반 그 언저리 같은데.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을 때 그제야 실감한다. 아, 내가 어느덧 서른을 넘겼다고?
얼마 전 문득 내가 마흔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충격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내가 마흔이라고? 그러니까, 나이 듦을 부정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마흔이라는 나이를 맞이할 것이라고 여태 생각조차 안 해 봤던 것이다. 자연스레 나이가 들어가며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머리카락이 하얘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도 갑자기 불현듯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10대, 20대를 거쳐 이제 막 30대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하게 되는 고민들이 있었다. 결혼, 직장, 돈 등등. 마치 인생의 또 다른 챕터가 열리면서 그에 맞는 과제들이 새로이 주어지는 느낌이었다. 40대가 된 나는 그때에 맞는 고민을 하고 있겠지? 그 시기의 나는 과연 어른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 인생을 말하기에는 누군가 이른 나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느끼는 바가 많은 요즘이다. 주위에서는 새로운 결실을 맞이하기도 하고, 또 영원한 이별을 마주하기도 한다. 나 또한 예외는 없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몸소 깨닫게 되는 요즘. 어른의 정의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이렇게 조금씩 인생에 대해 배워 가면서 나만의 순간을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닐까. 아니, 과연 '진정한 어른'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꼭 어른이 되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아마 이러한 물음과 생각들은 마흔이 된 나도, 쉰이 된 나도, 그 이후의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맞이하고 있을 나도 꾸준히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