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짓말 좀 해도 괜찮고 불량식품 좀 먹어도 괜찮다.

by 유명

나는 어릴 적에 거짓말을 많이 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엄마의 교육관과 지시사항을 따르고 약속을 지키기에 나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했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융통성이 넘쳤다.



엄마는 늘 학교 마치면 숙제부터 하고 놀라고 했다.

꽉 짜인 일과를 마치고 나면 놀거리는 무궁무진했고, 나는 바로 숙제를 하기보단 놀고 나서 숙제를 해도 되지 않냐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하지만 융통성이라고는 1도 없는 두 살 터울의 동생은 학교를 마치면 집에 와서 엎드려 숙제부터 했다. 숙제를 다 하고 노냐의 엄마의 물음에 안 하고 논다고 해도 혼이 났고, 하고 논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밤에 숙제하는 것을 들켜도 혼이 났다.

심지어 동생과 비교를 당하며 혼이 날 땐 동생이 얄미워 죽을 것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올 때도 내 속엔 호기심 가득한 내가 너무도 많았다.

내 속의 나는 문방구에 파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사탕들, 여러 가지 맛의 아폴로, 딱딱한 강엿, 총천연색의 하드, 위생과는 거리가 먼 허여 멀 건 떡볶이의 맛이 궁금하지 않냐며 내게 끊임없이 물었다.

뽑기 마차에서는 어떤 행운이 나를 기다릴지..

혹시 백 원짜리 동전 눈알이 박힌 커다란 황금 잉어가 당첨되는 거 아냐? 신문지에 담아 꼭대기에 소금을 뿌려주던 번데기나 달큰한 미숫가루 냉차맛도 궁금하지 않냐며 내 발을 마차 앞으로 끌고 갔다.

불량식품이나 비위생적인 것을 사 먹지 말라의 엄마의 지시사항을 따르기엔 나의 호기심이 너무 컸고, 나는 사 먹지 말라는 것들은 모조리 다 사 먹으며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긴 겨울방학. 춥다고 집안에서만 놀기엔 심하게 답답했다.

나는 동생들에게 달고나를 하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얘기했듯이 융통성 없고 겁많은 동생들은 위장에 구멍이 뚫린다고 절대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다며 안 가려고 했고, 나는 맏이의 위엄으로 설득하고 협박하고 꼬셔서 동생들을 데리고 달고나를 하러 갔다.

국자를 들고 차가운 공기 속에 팔을 몇 번 휘휘 저어 적당히 굳혀 나무젓가락으로 떠먹기도 했고, 모양틀로 찍어 모양대로 떼어가며 먹기도 했다.

컷 국자를 하고 동생들에게도 거짓말을 하도록 잘 교육시켜 놓았는데, 어리숙해빠진 막내가 턱밑에 염소수염같이 달고나의 긴 설탕수염을 달고 집에 가는 바람에 셋다 엄마 한데 죽도록 혼이 나고 나는 맏이라고 더 혼이 났다.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엄마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더라.

방안의 아이 숨소리만 들어도 공부를 하는지 핸드폰을 하는지 정말로 다 알겠더라.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작은 거짓말에 잘 속아준다.

아들이 어릴 때 하도 뚱뚱해서 수영을 보냈는데, 수영을 마치면 그렇게 기분 좋은 얼굴로 들어왔다. 하루는 입가에 닭꼬치 소스를 묻히고 들어왔길래 기분 좋은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맛있게 먹었으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고3 때 새벽 2시에 데리러 오라면 2시에 가고, 3시에 데리러 오라면 3시에 데리러 가면서 공부반 연애반이라는 것을 애초에 눈치챘지만 나는 모른 척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우리가 빗나가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도록 아주 엄하게 키웠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그렇게 엄하게 키우지 않아도 도덕적인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빗나가려야 빗나갈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처럼 반듯하게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를 닮아 자유분방함과 호기심과 융통성이 풍부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 뿐이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치명적이지 않다면 아이말을 믿어주거나 믿어주는 척을 한다.


어릴 적 거짓말을 하고 갖은 불량식품을 사 먹어도 나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는 비도덕적인 어른이 되지도 않았고 건강이 나빠 골골대지도 않는다.

오히려 건강한 음식들로 식탁을 채우고 진심으로 건강한 음식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내가 해주는 음식이 너무 건강식이라고 불평을 하지만, 결국 나이가 들면 엄마가 해주던 음식과 맛을 기억할 거라는 것을 알기에 밖에서 편의점 음식과 조미료로 범벅이 된 인스턴트를 사 먹어도 최대한 잔소리를 하고 그냥 건강한 집밥을 차릴 뿐이다.

불량식품 조금 먹는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런데 다 쓰고보니 아이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다. 먹는 것이나 환경호르몬에 관한 잔소리가 많은 편이라고 얘들이 내게 종종 얘기한 기억이 스쳐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