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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식단...정말 느리게 늙는거 맞나요?

by 유명

20대때 나는 엄마가 가끔 화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는 화장할 맛이 안 나겠다' 며 속으로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엄마는 어딜 가나 이쁘다, 미인이다, 인물좋다는 소리를 흔하게 듣는 사람이었음에도 내가 보는 우리 엄마는 그냥 나이 든 조금 예쁜 화장한 아줌마였다.

그 시절 나는 <내가 늙는다는 것> 은 영원히 안 올 것 같은, 닿을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일로 느껴졌다.

그날이 이렇게나 빨리 올지 그때는 몰랐다.



딸은 20대이니 화장을 한다.

집에 있을 땐 오만상 추접게 뒹굴다가도 약속이 생기면 그때부터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그럴 시간 있으면 나는 잠이나 더 자던가 넷플이나 볼 것 같은데, 약속이 생겼다 하면 때 빼고 광내며 바지런을 떨어대는 딸의 모습은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다.

화장 전후의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게 신기해 지나가는 말로, 언제 엄마도 화장 한번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같이 외출준비를 하던 어느 날, 딸이 나에게 엄마 얼굴 화장 한번 해줘도 되겠냐고 묻는다.

시간도 별로 없었고 귀찮은 생각도 들어 " 다음에~"라고 했는데

옛날 내가 엄마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딸도 느꼈나 보다.



자칭 타칭 엑스 세대로 불리던 20대.

나도 화장 꽤나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압구정동 오렌지족처럼 세련미와 부티 가득한 멋을 부릴 수는 없었지만 풋풋함과 젊은 에너지로 가득했던 그때.

유행하는 화장법과 헤어스타일로 나만의 멋 부리기에 심취했었다.


그 시절 남자친구는 나를 <매그리안> 이나 <보리사자>라고 다소 잔망스런 애칭으로 불렀다.

내 헤어 스타일이 영화 "해리와 샐리가 만났을 때" 에 나오는 맥라이언과 비슷하다고 붙인 별명이었다.

Meg Ryan을 한국식으로 <메그리안>으로 읽거나 한자로 "보리맥"과 라이언의 "사자"를 합성시켜 <보리사자>라고 불렀던 것이다.



하여간 <보리사자>든 <메그리안>이든 힙하고 핫하던 화장과 헤어로 영원할 것 같던 젊음을 누리던 그 시절이 나는 지금도 생생하건만, 딸은 나이든 나를 다소 짠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그 옛날 내가 엄마를 바라봤을 때처럼.


오늘 문득 생각이 나서 딸의 방으로 가 화장품 앞에 두고 앉았다.

딸의 얼굴 쇼츠에서 본 것들을 떠올렸다.

눈밑의 다크서클을 밝혀줄 컨실러를 칠하고, 내잡티를 가려줄 팩트를 팡팡 두들겼다.

하이라티터로 애교 살을 칠하고, 코 중심에 콧대를 세우고, 코끝에 동그랗게~~

어두운 쉐도우로 코쉐딩을 ...... 오우.... 쉿!!!!!!

했.......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요즘 핫하다는 저속노화 식단을 평생의 숙제처럼 차려왔다. 제철 채소와 과일, 좋은 지방과 적정량의 단백질, 5대 영양소가 잘 갖추어진 식단으로 상을차려 식구들을 먹이고 나도 먹어 왔건만 결국 나이대로 늙어간다. 물론 맛있어서 먹은거지 안 늙으려고 먹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름대로 건강한 음식으로 식탁을 차리고 먹어왔지만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나이들어가는 자신의 모습도 사랑하라지만 젊은 시절의 내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이고~~~저속노화 식단 까짓거 다~~~필요없다.

냉장고속 부라보콘이나 하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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