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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과 내가 만드는 인생의 집

by 유명

어릴 적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동화를 좋아했다.

어느 동화에서나 흔하게 등장하는 나쁜 계모,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 아빠, 사이좋은 오누이, 나쁜 마녀할멈.

오누이가 고난을 겪지만 마침내 행복해지는 이야기.

마녀를 불구덩이 속에 밀어 넣는 장면이 끔찍하긴 했지만, 무사히 탈출해서 집으로 가는 동화는 스릴이 넘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내 마음을 홀리는 것은 마녀할멈이 사는 알록달록한 과자집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과자집은 내가 한 번도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화려한 색깔과 모양이었다.

바삭해 보이는 갈색의 쿠키지붕, 진한 초코가 흘러내리는 벽, 알록달록 롤리팝 사탕기둥, 폭신해 보이는 빵으로 된 창문 테두리, 찐득한 쨈이 흘러내리는 겹겹의 파이로 만든 대문, 동글동글 화려한 알사탕과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을 것 같은 도너츠로 장식된 집.

과자집의 맛을 상상하며 책을 보다 보면 마음이 한없이 황홀해졌고,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그림을 문질러 보기도 했다.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었다면 과자집에 마녀가 사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달콤한 과자집에서 살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들을 언제든 마음껏 떼먹을수만 있다면 나는 아마 영혼까지 팔았을지도 모른다. ^^



인생의 시간들을 집으로 짓는다면 어떨까?

우리의 인생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도 있지만, 성취하지 못했거나 실패했던 일, 원치 않는 괴로운 일들로 점철되어 있다.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룬 것, 좋은 결과를 얻은 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일들도 있다.

성공이 달콤하고 아름답지만 실패로 인해 내면이 더 단단해지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며 깊이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인생의 시간을 집으로 지어본다면, 달콤하기만 한 과자집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던 시간들은 단단하게 받쳐주는 땅이 될 것이고, 포기하고 싶지만 묵묵히 버텼던 시간들은 튼튼한 기둥이 될 것이다.

어쩌면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아도 노력의 시간이 길수록 땅은 더 깊고도 단단해 질 것이다.

기둥은 더욱 굵어져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 혹은 내가 이룬 결과물들은 웨하스지붕이 되어 비바람으로부터 나를 지켜 줄 것이고, 달콤한 사탕이나 페레로로쉐 초콜릿이 되어 벽 군데군데 박혀 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다.



인생의 집이 동화처럼 달콤하고 상상만큼 맛있지 않아도 자신이 만든 인생의 집이라면 누구든 그것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려한 궁전이나 거대한 왕궁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리고 아직은 집을 다듬고 고칠 수 있는 시간들이 있다..

달콤하기만 한 집보다 더 다양하고 풍성한 맛으로 집을 짓는 상상을 해본다.

어쩌면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보다 꿈꿀 때가 더 설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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