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물 먹으면 돈 내야 돼요~

by 유명

계절이 여름의 문턱을 넘으려 하고 있다.

뜨겁던 기운이 가시고 새벽엔 추운 느낌마저 있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긴다.


3년 전 9월, 나는 수영을 배우려는 세 번째 시도를 했었다.

20대 중반에 한번, 후반에 또 한 번 수영 강습을 들었으나 물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바 쌈바를 떨며 반에 민폐만 끼치다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그랬던 내가 3년 전, 여름이 가을의 문턱을 향해 가고 있던 딱 이맘때 9월.

두 번이나 포기했던 수영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개학을 해서 좀 여유로워진 수영장.

오후 2시 초급반.

오후 2시라는 느긋한 시간의 초급반은 예상하다시피 소수의 30대와 다수의 40대와 50대 , 그리고 약간의 60대 아줌마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이가 조금 들고 나니 좋은 점 중 하나는 꼭 무얼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마음의 힘을 빼니 몸에도 힘이 빠졌고, 그러면서 수영의 매력에 빠졌다.


초급자끼리 나누는 동병상련의 어려움, 초급자 주제에 서로 자세를 코치해 주며 나누는 진한 동지애.

배워가는 재미도 재미였지만 가장 화룡점정은 바로 수영 강사 선생님이었다.

중년의 아줌마들이 가득한 우리 반의 수영 강사 선생님은 21살의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딱히 전형적인 꽃미남은 아니었다.

그런데 숨이 차도 웃고, 물을 먹어도 웃고 있는 나를 느끼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건 내 옆의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별 얘길 한해도 아줌마들은 수줍게, 혹은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그 어떤 개그맨보다 박보검이나 차은우가 제일 재밌다더니 나는 수업 시간마다 그 말의 위력을 실감했다.

서글서글 넉살 좋은 선생님 던지는 농담 한마디 만으로도 해피 바이러스가 가득했던 우리 반.

순딩이 초급반 아줌마들은 죽을힘을 다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발차기를 하고 팔을 돌리고 음파음파를 하면서도 항상 방실 방실 웃어댔다.



유독 겁이 많거나, 운동 신경이 둔하거나, 성격이 까칠하거나, 엄살이 심한 회원 한두 명씩은 있기 마련이건만, 선생님은 우리가 선생님의 엄마나 이모쯤 되는 느낌이었는지 적당히 구박을 하면서도 한 명 한 명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셨다.

힘도 달리고, 유연성도 떨어지고, 운동신경마저 없는 우리 반 회원들은 느렸지만 하나하나씩 배워갔다.

물에서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뜰 수 있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영이 주는 성취감은 대단했다.



그렇게 9개월의 수업 후 우리반은 다른반보다 느리게 고급반이 되었다.

마침내 우리를 고급으로 만드신 선생님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해병대로 떠나시게 되었고, 우반 회원들은 그간의 감사함을 담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생님과 식사를 하며 아들 군대 보내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떠나보냈다.


자유형과 배영을 배울 때 특히나 물을 많이 먹었는데 그때마다 선생님

"물 먹지 마세요. 물 먹으면 돈 내야 돼요~~" 하셨는데 그게 그렇게나 웃긴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땐 들어도 들어도 얼마나 웃겼던지...

먹지말라는 물을 굳이굳이 먹으면서도 한 번도 돈 안 냈던 우리 반 회원들.

이제는 다들 물개가 되어 신나게 수영장을 가르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