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 왔다.
병아리는 딱 봐도 비실비실한 게 금방 죽을 거 같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정성스럽게 사료와 물을 주고 바닥의 신문지도 갈아주면서 '삐삐'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는데, 의외로 쑥쑥 자랐다.
마침 조카가 놀러 온 날이었다.
동네 친구들에게 삐삐 자랑도 할 겸 아이 셋은 병아리를 데리고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딸아이 말이 삐삐를 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잠시 뒤 아이 셋이 울면서 뛰어 들어왔다.
삐삐가 바닥에 있는 것을 콕콕 쪼아 먹다가 목에 무언가가 걸려서 '켁켁'거리더니 결국 죽었다는 것이었다.
얘들 셋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곡을 하니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했는데 충격이 있지 않을까 우왕좌왕하는데 7살 조카가
"우리 병아리 묻어주고 제사 지내주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울던 아이들은 갑자기 어디다 삐삐를 묻을지 고민하더니 아파트 화단 나무밑에 묻어주자고 의견을 모았고, 조카는 뜬금없이 시를 한 수 지었다.
우리는 삽을 준비해 아파트 화단으로 갔다.
먼저 아이 셋이 땅을 파고 삐삐를 넣은 다음 흙을 잘 덮어 주었다.
흙주위를 셋이서 뱅글뱅글 돌더니 조카가 그 앞에서 지어 온 시를 읽었다.
[제목:삐삐에게]
삐삐야
그때 놀았을 때
좋았는데
이제 죽고 나니까
너가 불쌍해
하늘나라에서도 잘 지내
조카는 낭독을 했고, 우리 아이들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슬픈 표정을 하고 서있었다.
시 낭독이 끝나자 세 아이는 무덤 앞에서 절을 두 번씩 했다.
어른 하나 ,9살 딸아이,7살 아들과 7살 남자조카 이렇게 넷은 아파트 화단에서 삐삐의 장례를 치렀다.
신해철은 병아리의 죽음에 영감을 받아
<날아라 병아리> 라는 명곡을 만들었지만 조카를 비롯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영감은 찾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때 "치킨이나 삼계탕 먹을 때 삐삐 생각나지 않았냐?" 하고 물으니
"그러기엔 우리가 치킨을 너무 많이 먹었어."
라고 할 뿐이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자귀나무 꽃이 피거나 배롱나무 꽃이 피었을 때, 혹은 대추가 조롱조롱 달린 나무 앞을 지나거나 눈이 펑펑 온 날 눈사람을 만들다가도 삐삐 무덤 쪽을 흘깃 보면서
"삐삐 잘 있겠지?"라고 한 사람이 물으면 "그렇겠지..."라고 누군가 대답을 했다.
아이들이 울고불고 했던 통곡의 시간은 이제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았고 병아리는 갔지만, 치킨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