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문화센터 수업에서였다.
수업을 먼저 들어 아는 사이인 것 같은 무리가 수업 후 같이 차나 한잔 하자며 갑자기 제안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도 트고 이름도 트고 가족관계도 트면서 서로 친해졌다.
나이차가 있었지만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 관심사가 비슷했고, 우리 넷 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남편 이야기, 각자의 이야기들을 하며 우리들의 우정은 깊어갔다.
어느 날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중 나를 유독 챙겨주던 S언니가 생선 한 점을 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꼬리 쪽 먹지 말고 몸통 먹어~"라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치껏 꼬리 쪽의 생선을 먹고 있었나 보다.
그런 내게 언니는 가운데 몸통 쪽의 통통한 살을 똑 떼어 줬던 것이다.
그냥 그게 다였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언니가 내게 "착한 아이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쁜 아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 속의 <눈치 보는 내면아이>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무언가를 말하진 않았지만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이해가 되고 알아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아~이 사람에게 나는 어떤 것도 허용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고비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해 울고, 하소연을 하고,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부었는데, 그때마다 언니는 "그래, 네 말이 맞다."라고 했다.
그 어떤 차갑고 이성적인 충고도, 비판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다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그래, 네 말이 맞다."라고 했다.
나는 그때 누군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에 나오는 소녀가 떠올랐다.
가난한 집에서 부모의 무관심과 아빠의 냉대속에 자라던 소녀가 잠시 친척집에 맡겨지게 된다. 거기에서 소녀는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소녀를 잠시 맡아 키웠던 부부가 소녀에게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소녀는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과 세상을 조금 더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소설은 열린 결말이지만, 나는 그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부모와 살든 아니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확신을 한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S 언니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같이 생선구이를 먹으러 가서 생선의 통통한 몸통을 똑 떼어 언니에게 주고 싶다.
나의 사랑과 애정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