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동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앞 주택의 상가 한 칸에 조그마한 문방구가 있고, 주택의 대문 위에는 덩굴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다.
나는 매일 달리기를 하며 그 앞을 지나간다.
요즘 흔하지 않은 작은 문방구라 안이 궁금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자라는 덩굴이 더 궁금했다.
뛸 때마다 담쟁이는 아닌 거 같은데 설마 포도겠어? 하고 눈길을 주며 뛰었다.
어제도 그 앞을 뛰어가는데 텁텁한 바람을 타고 살캉~포도냄새가 실려 왔다.
새콤달콤한 포도 냄새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이 고였다.
목을 빼고 살펴보니 덩굴과 잎사이로 포도송이가 자라고 있었다.
무심히 자라던 포도나무가 포도의 계절이 되자 포도를 키워냈다.
30여 년 전 더웠던 여름.
엄마는 티브이에서 포도 다이어트를 해서 살이 쏙 빠진 연예인을 보고는 "바로 저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건강함을 자랑하는 나와 두 여동생들까지 이참에 포도다이어트로 살을 쏙 빼라며 열심히도 포도상자를 사다 나르셨다.
원칙은 간단했다.
매끼 포도만 먹어야 하고, 포도와 물 외에 다른 것은 먹으면 안 된다는 것.
지금은 살이 빠지는 메커니즘이나 인간의 몸에 대한 연구들도 많고, 유튜브만 찾아봐도 근거 있고 합리적인 다이어트법이 많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유명한 연예인이 나와서 한 달 만에 십 몇킬로를 뺐다고 하면 그것은 완벽한 검증을 거친 불패의 다이어트 법으로 각광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은 기상천외의 다이어트법도 많았는데, 그때는 근본 원리도 모르면서 그렇게 단순무식하게 다이어트를 하곤 했었다.
9살 때 볼거리를 해서 물 한 모금 삼키기 어려울 만큼 아파도 바나나 우유는 먹을 수 있었고, 고3 때 편도선이 붓고 열이 펄펄 끓어도 된장찌개에 커다란 무김치를 젓가락으로 푹 찍어 갖고도 밥 한 그릇은 거뜬히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맛있어서 먹은 게 아니라 약을 먹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하고 싶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께 뭔가를 조를 때 밥을 굶기도 한다는데 , 나는 무언가를 크게 조른 적도 없었거니와 그 방식이 굶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내게 원푸드 다이어트로 포도만 먹어야 한다는 것은...
굶는 것은 아니지만 원하는 것을 다 먹지는 못하는... 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포도 말고도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포도 정도에 잠잠해질 식욕이 아니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엄마한테는 동네 한 바퀴 뛰고 온다고 하면서 차례대로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한 사람씩 컵라면으로 각자의 배를 채우고 집으로 와 교대를 해주며 차례대로 편의점을 들락날락했다.
딸 셋이 한마음으로 뭉치면 엄마 한 사람 속여먹는 건 일도 아니었다.
포도만 먹으면서도 우리들의 얼굴은 포도알 만큼이나 동글동글했고, 살이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엄마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며 방향을 바꾸었다.
우리들의 포도 다이어트는 그렇게 라면으로 막을 내렸다.
포도의 계절이 오고 있다.
나무는 무심하게 서서 겨울의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과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포도를 키워 냈다. 덩굴을 뻗고, 잎을 키우며 조용하게.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지루한 일상, 때로는 나를 흔드는 크고 작은 흔들림 속에서도 인내하는 하루하루는 내게도 포도라는 달콤한 결실을 줄 것이다.
귀찮지만, 덥지만, 몸이 무겁지만, 피곤하지만, 잠을 못 잤지만, 배가 너무 부르지만.
수백 가지의 달리기 싫은 이유를 떨쳐내고 오늘도 나는 포도나무 앞을 달린다.
진짜 중요한 것은 포도 그 자체가 아니라 포도를 키우는 시간이 나무의 뿌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옛날의 포도 다이어트때는 라면을 먹으러 편의점으로 달렸지만, 지금은 내 의지로 포도나무 앞을 달리고 있다.
달콤한 포도를 떠올리니 파블로프의 개처럼 또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