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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담는 방식과 기울어지지 않는 사랑

by 유명

날씨는 덥지만 맛있는 과일이 많아 즐거운 계절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해주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뭐든 잘 먹고 딱히 식탐도 없는데, 유독 욕심을 부리는 것이 있다.

바로 과일이다.



과일을 많이 먹겠다고 서로 싸운 적은 없지만 과일접시에만 유독 포크가 빠르게 간다.

여유있게 먹으며 맛과 향을 음미하면 좋을것 같아서 과일만은 각자의 접시에 나누어 준다.


여기서 포인트는 각자의 접시에 과일을 담는 나의 방식이다.


1.똑같은 접시를 꺼낸다.


2. 사과, 오렌지, 참외, 배처럼 큰 과일은 몇 개를 깎든 하나를 반으로 나누어 공평하게 담는다.

첫 번째 것도 반으로, 다음 것도 반으로 갈라 담는다.

새 개를 깎든 네 개를 깎든 온 거 하나를 나누어 담는다.

과일마다 당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과일맛까지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다.


3.딸기나 샤인 머스캣, 방울토마토나 체리 같은 과일은 개수를 세어 똑같이 담는.


4.블루베리같이 더 작은 과일은 저울에 무게를 잰다.


둘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나에게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4남매의 장녀로 크면서 공평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의 섭섭함이 생각나서 내 나름대로 하는 노력이다.

장녀라는 위치가 대우를 받거나 더 챙김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기분은 좋았지만 동생들에게 미안했고, 동생들이 더 챙김을 받을 때는 섭섭했다.

명절 때 누구는 옷을 사주고 누구는 양말을 사주면 내가 무얼 받느냐에 따라 기쁘거나 섭섭했던 기억이 있다. 래서 나는 최대한 공평한 사랑을 주고 싶었다.



공평한 사랑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그 시기의 상황이나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부모님의 관심과 지원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에도 조금씩의 그림자가 생겼을 것이다.



부모의 지원과 함께 받은 기대는 무거웠고, 그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채감이 들 때도 있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웠는데 그것 또한 쉽지가 않았다.



성실하고 착한 딸에게는 그런 모습을 기대했고, 독립적이고 할 말 따박따박하는 아들은 기본만 충실해도 고맙다 생각했다.

성실함을 갖춘 첫째 아이가 성실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잔소리를 하거나 실망을 했다.

인정할만한 것이 아니면 순응하지 않는 둘째는 순응하고 받아들이기만 해도 기특하다 했으니 애초에 기대 자체가 달랐던 것 같다.


둘째는 밥만 잘 먹어도 칭찬하고, 똥만 잘 싸도 칭찬한다더니 첫째보다는 둘째에게 기대 없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었나 싶다. 하지만 첫째라는 이름이 주는 기쁨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컸고 온 정성으로 키웠으니 불공평한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둘째는 "엄마는 맨날 누나만 칭찬하고 자기는 혼만 낸다"고 했다.

칭찬할만하니까 칭찬했고, 혼낼만하니까 혼냈는데, 아들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조건 없이 사랑하려고 했다.

똑같은 사랑을 주려고 했다.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종종 깨닫는다.

사랑의 무게보다 각자의 위치에 맞는 책임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을 때 사랑은 퇴색되고 기대는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첫째는 첫째라서 예쁘고 둘째는 둘째라서 예쁘다.

딸은 엄마에게 항상 무한긍정이라 고맙고,

츤데레인 아들은 은근한 배려가 고맙다.



사랑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이 있으면 좋겠다.

그게 양팔저울이면 더 좋겠다. 둘다에게 무한대의 사랑을 주고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게.

나의 사랑은 지구의 자전축처럼 기울어져 보일지도 모르지만, 정확히 중앙의 극점을 관통하여 온마음으로 둥글게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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