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루기라면 자신 있는 사람이다.
해야 하는 일을 안 하면 되는 것이니 어려울 게 없다.
내 미루기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확실히는 모른다.
하지만 남아있는 최초의 기억은 어린 시절 방학숙제이다.
탐구생활, 만들기, 방송 듣기, 독후감, 글짓기, 편지 쓰기, 그림 그리기, 곤충 채집, 식물 관찰 등등 그 시대에는 왜 그리도 숙제가 많았던지.
그중의 백미는 일기 쓰기가 아니었을까.
모든 숙제를 꼭 매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기만큼은 미루지 않고 써야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나고, 날씨도 알 수 있었다.
[방학숙제는 자고로 미뤄야 제맛]이라는 표어를 만들고 싶을 만큼, 제 때 숙제를 한다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름 꾀를 부렸다. 일기장에 날짜와 날씨, 그날 있었던 일 중 일기로 쓸만한 사건의 제목까지만 적어놓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던 것이다.
자기 전에 엎드려 날짜와 제목만 적어 놓았던 일기장을 이불밑에 숨겨두고 아침부터 밖으로 놀러 나갔다.
한여름의 아침해는 뜨거웠고, 매미소리에 귀는 따가웠다. 집 앞 공터에 무성하게 자라난 풀밭에서 메뚜기인지 여치인지를 잡는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녔다.
억센 풀들에 팔과 다리가 긁혀 가렵고 따가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굴이 벌겋게 익고 땀이 나도 한여름의 놀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불렀다.
엄마 목소리의 크기와 높낮이와 이름 끝의 늘어짐만으로도 화가 나서 부르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심장이 콩닥거렸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는 들숨 날숨의 간격이 매우 짧았고, 미간에 인상을 쓰고는 내 일기장을 손에 들고 있었다.
역시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이후의 상황은 상상에 맡기겠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미루기는 중고등학교 때 벼락치기 공부로 이어져 지금까지 함께하는 평생의 동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주부가 되고 나서 반찬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본다.
다른 채소는 별 고민 없이 사는데 유일하게 살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 채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부추이다.
장본 대부분의 채소는 싱싱할 때 반찬을 만들어 먹는데 이상하게도 부추는 사고 나면 정말로 손이 안 간다. 다듬고 씻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기 때문이다.
부추는 유독 잘 상해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끝부터 마르거나 속부터 물러지며 상한다. 부추를 사놓고는 미루고 미루다 상해서 못 먹고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부추를 안 사면 되는데 그러기엔 부추로 만든 반찬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 문제다.
봄이 되니 초벌부추가 나온다.
(그렇다.... 글쓰기를 미루고 미루다 도저히 맘에 드는 글이 나오질 않아 봄에 써놓았던 이 글을 한여름인 지금 올리는 것이다.)
된장찌개에 넣어먹고, 간장과 식초와 고춧가루를 넣어 새콤하게도 먹고, 살짝 데쳐 참기름에도 무쳐 먹고, 김치도 담아먹고 싶다.
또 망설이면서 부추를 산다.
그리고는 역시나 미루고 미루다 상하기 직전에야 다듬고 씻어 요리를 한다.
일기에서 시작된 나의 미루기는 여전하다.
어쩌면 오늘 밤 엄마가 우리 집 냉장고 속 시든 부추를 꺼내 들고 매서운 음성으로 나를 부르는 꿈을 꿀지도 모르겠다.
그것보단 김치 만들기가 취미인 바로밑의 동생이 부추김치를 담아 한통 가득 주는 꿈을 꾸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 장금이 손을 가진 막내 동생이 부추김치를 담갔는데 식구들이 당최 먹지를 않는다며 한통 가득 주는 꿈을 꾸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