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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한 병이면 제사준비는 거의 다한 거나 다름없다

by 유명

내일은 제사이다.

결혼전 명절이나 제사때 큰엄마나 숙모들이 많아 음식쟁반도 날라본적 없었던 나는 결혼을 하던 그날부터 누구 집 며느리가 되어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시아버지의 제사를 지냈다.

설, 추석과 함께 제사까지 매년 3번씩 상을 차리던 일은 14년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4번이 되었고, 6남매 중 유일한 아들인 남편덕에 누구에게 미룰 핑계도 없이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네~~~ 시누이가 다섯입니다...하하)


결혼과 동시에 나는 연세가 많으셨던 어머니 대신 혼자 제사를 준비했다.

결혼 전 요리라는 것을 거의 해본 적 없던 나는 일머리마저 지지리도 없었다.

그래서 명절이나 제사전에 시간이 되는 동생 중에 아무나 불러 난리난리를 치며 새벽까지 음식을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땐 친정 엄마가 두어번 전을 구워서 보낸 적도 있다.

지금 같으면 요령껏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거나 일부 음식을 사서 준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땐 무슨 사명감에 불탔는지 모두 내손으로 준비하는 걸 당연히 여겼다.



밤 12시까지 기다려 지내던 제사를 언제부턴가 저녁 7시로 바꾸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제사라 생각하지 않고 시댁식구들과 다 같이 식사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했다.



전은 식구들 모두 좋아하지 않아 구색 맞추는 정도로만 산다.

대신 나물과 탕국, 조기와 돼지고기 삶는데 신경을 쓴다.

식구들이 특히 좋아하는 나물은 손이 많이 가지만 다 만들어놓고 나면 뿌듯하다.

무, 콩나물,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를 기본으로 해서 박나물, 미나리, 마재기, 우엉등을 그때그때 추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제사음식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참기름이다.

나물이 엔간히 맛이 없어도 조선간장으로 간을 잘 맞추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듬뿍 넣어주면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제사를 앞두고 갓 짠 고소한 참기름을 준비한다.

참기름만 준비하면 제사준비는 거의 다 한 것이나 다름없다.



제철도 아니지만 비싼 사과와 배, 커다란 수박과 멜론, 비닐하우스에서 곱게 자란 하우스귤과 조금 이른 샤인머스캣을 사 오느라 어깨와 팔이 조금 빠지면 된다.

갖가지 나물을 다듬고 씻느라 손이 아주 약간 물에 팅팅 불면 된다.

나물을 썰고 오징어와 조기 손질하고 문어에 밀가루를 넣어 박박 치대느라 손가락 관절이 쬐금 아프고 거칠어지면 된다.

무아지경으로 몰입하다보면 비릿한 바닷내음에 순간 바닷가로 휴가온것 같은 착각을 덤으로 얻을수도 있다.


조기를 굽고 돼지고기를 삶느라 열기 가득한 주방에서 나물을 볶고 무치는 나의 얼굴은 요즘 한창인 잘 익은 체리색이 되겠지만, 제삿날은 식구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으로 이야기와 정을 나누는 좋은 날이다.

종일 서있느라 종아리는 튼실해지니 좋고, 족저근막염이 심해지는 것 정도는 죽는 병도 아니니 뭐 신경쓸 거리도 안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미 금방 짠 고소한 참기름 한병을 준비했으므로 제사준비는 거의 다 한거나 다름없다.


기름을 한 병을 이미 준비했으므로


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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