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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미역국의 시간과 쇠고기 미역국의 시간

by 유명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다 다시 친정으로 몸조리를 하기 위해 왔다.

엄마는 산모용 미역을 불려 큰 냄비에 미역국을 끓였다.

한 가지만 먹으면 질리기도 하고, 영양적인 균형을 위해서라도 황태와 쇠고기를 번갈아가며 국을 끓였다.

미역국에 들깨가루를 풀고 은근히 끓이면 온 집에 미역국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렇게 푹 끓인 미역국을 끼니마다 한 대접씩 먹었는데 이상하게 황태미역국만 먹으면 마음이 서운했다.



아이는 태열 때문인지 얼굴이 새빨간 게 못생겨 보였다.

눈은 누굴 닮아 저렇게 작은 건지 안타까웠고, 머리카락은 심하게 곱슬거리는 게 악성곱슬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아이는 2.8킬로로 작게 태어나 애처로웠는데 평생 약하게 자라는 건 아닌지 걱정이 줄줄이 사탕처럼 솟아나 마음이 자꾸만 작아지고 우울해졌다.



엄마만 해도 그렇다.

어쩌다 하루 곗날이라고 점심 먹으러 나간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운했다.

내손으로 국 한 그릇과 밥 한 그릇 떠서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세상에 내 걱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아이를 낳은 3월, 집안에 갇혀 꽃송이 하나 못 보고 솜이불 밑에 누워있다 미역국만 꾸역꾸역 먹는 시간에, 남들은 나른한 몸과 풀어진 눈으로 따사로운 햇살과 아지랑이를 보며 봄을 한없이 즐기는 것 같았다.



퇴근한 동생이 집에 오면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다 다음날 화장대 앞에 앉아 예쁘게 화장하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좋은 시절이 다 간 사람처럼 느껴져 또 우울해졌다. 삼칠일까지 안 씻는 게 좋다고 해서 매일 땀을 흘리면서도 씻지를 못해 형태만 사람이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땀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 나의 머리는 떡이져 찰싹 달라붙어 동그란 양파같았고, 냄새마저 썩은 양파 같았다. 화장대위의 향기로운 화장품과 색색의 립스틱을 보니 눈물이 났다.

심지어 동생이 다이어트 때문에 걸린 변비마저도 부러웠다.

"너는 다이어트 때문에 변비 왔지? 난 철분제 때문에 변비 왔는데..."

동생이 출근한 후 섀도 뚜껑을 열어보며 나도 요런 걸 양볼에 볼그스름하게 바르고 다니던 게 엊그제였는데 싶어 또 서글펐다.



아파트 2층이었던 우리 집 창밖에 핀 목련이 봄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 잎새처럼 시들어 떨어지는 것 같아 애달프고 가슴이 떨렸다.

황태는 피를 맑게 해서 약으로 먹을 정도로 좋은 음식인데 나는 황태미역국만 먹으면 자꾸만 우울해졌다.



내 아이는 잘 클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계모가 아닐까?

이 여리고 순수한 생명체가 거칠고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꼬..

끝도 없이 이어지는 걱정으로 차라리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내가 황태를 싫어한 것도 아니었는데.



황태미역국의 시간이 끝나면 쇠고기 미역국의 시간이 왔다.

평소에 내가 유독 쇠고기 미역국을 더 좋아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쇠고기 미역국만 먹으면 며칠 굶다 먹는 사람처럼 밥이 입에 쫙쫙 붙었다.

간도 딱 좋고 밥도 찰지게 느껴졌고 기분이 좋았다.

쇠고기가 푹 익어 슬슬 씹히는 미역국을 한입 한입 먹다 국물이 바닥을 보이면 뿌듯한 임무를 수행한 것 마냥 든든하고 기운이 났다.



자고 있는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눈코입이 오목조목 어쩜 이렇게 제대로 붙어있는지 신이 빚은 완벽한 조형물 같았다.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 붙어있는 이 아기는 신이 주신 선물이자 내 인생의 기적처럼 느껴졌다.

기 머리 위에 있는 숨구멍의 움직임마저 우주의 기운이 들어오는 것처럼 신비로웠다.

기의 꼼지락 거림에도 기쁨과 환희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모성애가 넘치는 엄마가 되었다.



"근데 얘기들은 다 이렇게 못생겼나"라는 동생의 농담(진담이었을 수도 있다) 한마디에 어디서 그런 잡소리를 하냐며

"아기는 본래 미완성의 얼굴로 태어나고, 어릴 때 못생긴 얘들이 클수록 더 이뻐지는 거 모르냐"며 동생을 사납게 족쳤다.

나는 세상 어떤 엄마보다 강한 엄마가 될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쳤다.



황태와 쇠고기의 조화였는지 호르몬의 조화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황태미역국과 쇠고기 미역국을 먹으며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던 몸조리 시절은 호강에 가까웠음을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호되게 깨달았다.





몸조리를 하며 질리도록 먹었던 미역국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힘들 때 나를 보살핀다.

황태든 쇠고기든 아니면 멸치로 끓이든 푹 끓인 미역국을 먹으면 속에서부터 따뜻함이 차오른다.

둥글고 단단한 자신감으로 나는 다시 세상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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