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주 조금 과합니다

by 유명

내 딸은 아주 조금 과한 구석이 있다.

뭔가 하나에 미치면 옆도 뒤도 보지 않고 그것만 본다.



얘가 공부에 미쳐서 의대를 가고

외국어에 미쳐서 5개 국어를 하고

수학에 미쳐서 심심할 때면 수학 증명하기 놀이를 한다.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이것은 나의 희망과 상상이 뒤섞인 망상이다.


우리 딸이 미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맛있는 것, 달달한 것, 그런 것들에 마음을 좀 뺏기는 편이다.

젤리에 미치고 뿌링클 치킨에 미치고 과일빙수에 미친다.

심지어 한 번 미쳤다 하면 잘 질리지도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맛있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우리 딸이 조금 과하다는 것일 뿐.



그런 딸이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다이어트 식단을 한다고 했다.



연두부가 오고, 곤약 냉모밀이 배달되었다.

저당 아이스크림이 오더니 저당 참깨 드레싱과 다이어트용 핫소스가 왔다.

다크 초콜릿이 오더니 저당 아몬드 초코볼이 왔다.

무가당 두유가 오고 통곡물 시리얼이 배달되더니 무려 곡물맛, 초코맛, 흑임자맛 단백질 쉐이크 3통이 왔다.

닭가슴살이 오더니 다음날은 닭가슴살 소시지가 3가지 맛으로 배달되었다.

그릭요거트와 아사히베리 가루, 3가지 베리가 믹스되어 있는 이름마저 냉동 트리플 베리가 왔고 냉동실이 꽉 찰 때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수있는 통곡물 또띠아가 배달되었다.

숫자 3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제품들에 꽂혀 저것들만 있으면 살이 그냥 쭉쭉 빠지는 줄 알고 신나게 주문을 해댔다.

이쯤 되고 보니 조금 무서워진다.

얼마나 더 살거니...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내돈내산이 아니라 엄카 내산쯤 되겠다.

과하다 과해.... 너~~ 무 과하다....



물론 나도 평생을 다이어트가 필요한 몸으로 살아온 사람이라 다이어트에 대해 이런저런 훈수를 둘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이어트의 제1원칙은 필요한 칼로리보다 적게 섭취하고 더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또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홈트를 하던 딸이 시뻘게진 얼굴로 외쳤다.

"엄마. 이제 알겠다. 저딴 것들이 있다고 살이 저절로 빠지는 게 아니다.

헥헥~~

적당히 먹고 운동을 해야 살이 빠지지... 헥헥~~

나는 정말로, 진짜로, 제발 그만 좀 먹어야 돼~~~~~!!!!!!"

딸이 이제야 조금 이성을 찾은 건가...

기특함과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잠시 후 운동을 마치고 씻고 나온 딸이 기분 좋은 얼굴로 저당 아이스크림을 하나 뜯어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라라 스위트 같은 건 있어야 돼~"



그러던 어느 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보다 위대한 발견을 했다며 눈을 반짝였다.

식욕은 항상 밤에 폭발을 하는 게 문제인데, 살 안 쪄서 저녁에 먹을 수도 있고 맛있는데 심지어 포만감까지 있는 걸 찾았다고 했다.

그건 바로바로 냉동 베리라면서 냉동베리를 아이스크림처럼 입에 넣고 스르르 녹여 먹었다.

과일인 듯~ 아이스크림인 듯~ 내 거 같은 너~~~



머리를 틀어올리고 앉아 만감이 들때까지 블루베리를 는다. 얼마나 열심히 먹은 건지 입술과 입주위가 시커멓게 된 모습이

갓 쓴 저승사자보다 무섭다...

음.... 역시나 과하다.... 과해.



그런 딸과 어제 잠시 슈퍼를 들렀다.

필요한 것을 바구니에 담고 딸이 있는 과자 코너로 갔다.

과 코평수가 약간 커진 딸이 평소와는 다른 발놀림으로 과자코너 주위를 돌고 있었다.



약간 흥분한 듯, 약간 숨이 가쁜듯한 목소리로

"엄마, 내가 녹차 좋아하는 거 알지? 롯데에서 야심 차게 말차 프로젝트를 하나 봐. 꽤 괜찮아 보이지 않아?"

나의 동의를 구하듯 말차 빼빼로, 말차 빈츠, 그리고 말차 아몬드 초코볼을 손에 들어 보여준다.

금, 은, 동메달을 따 3관왕을 한 것보다 이걸 찾아낸 자신이 더 장하고 대견하다는 표정이었다.



맛있는데 영양가 있으면서 살 안 찌는 거 뭐 있을까를 삼시세끼 밥 먹는 것보다 더 자주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먹는 걸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저 아이는 내 딸이 맞구나.

말차라떼를 사랑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