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가족끼리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놀러 갈 기대에 부풀어 우리는 신나게 계획을 짰고, 오사카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제일 기대했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딸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워낙 건강 체질이었고, 배앓이나 장염도 거의 안 했던 아이였기에 큰 걱정은 안 했다. 그런데 갈수록 배가 많이 아프다고 했고, 익스프레스권을 샀음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적당히 놀고 호텔로 돌아왔다.
결국 저녁엔 열까지 났고, 다음날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기에 급한 대로 해열제만 먹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병원을 갔지만 명확한 진단은 해주지 않고, 큰 병원을 가보는 게 좋긴 하겠으나 일단 항생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여행으로 나도 컨디션이 떨어져 있었고, 설명절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분주했다. 딸아이가 심하게 아프지는 않다고 해서 일단 약을 먹으며 지켜보자 싶었다.
약을 먹어도 아이는 시름시름 아팠고,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며 빨리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급하게 규모가 있는 아동병원으로 데리고 갔더니 맹장염 같다며 3차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권역 응급 의료센터가 있는 큰 병원으로 가 수술을 하게 되었다.
피곤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조언을 새겨듣지 않았다는 생각에 많이 미안했다.
두 시간쯤 걸릴 거라던 수술은 거의 세 시간이 걸렸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복막염이 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수술 후 방귀가 나올 때까지 딸은 음식은 물론이고 물도 마시지 못했다.
아픈 아이를 방치한 나쁜 엄마라는 생각에 나 역시도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딸이 물도 한 모금 못 마시고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있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밥을 먹나 싶었다. 그래도 아픈 아이를 간호해야 했기에 쓰러질 순 없으니 병원 매점에서 무언가 간단하게 먹긴 한 거 같다. 금식으로 딸의 후각이 예민할 것 같아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니라 최대한 냄새가 나지 않는 우유나 두유 같은 것을 골랐다. 요기만 되게 밖에서 후딱 먹어치우고 양치를 한 뒤 병실로 돌아가 딸을 간호했다.
생각보다 방귀는 빨리 나오지 않았다.
짬이 날 때마다 남편이 들렀지만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니 딱히 옆에서 해줄 것도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고 드디어 소리가 났다.
애매했지만 분명 방귀소리였다.
간호사가 물이나 미음 같은 음식부터 가볍게 먹어도 된다고 허락을 했다.
아이에게 뭐가 제일 먹고 싶냐고 물으니 오렌지 주스라고 대답했고, 남편은 말이 끝나자마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잠시 후 남편이 들고 온 흰 비닐봉지엔 갖가지 종류의 주스와 요플레와 달달한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달고 자극적인 걸 먹이는 건 아니지 않나 ‘라는 소리가 채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남편은 이미 종이컵을 잡고 소중하게 오렌지 주스를 따르고 있었다.
딸은 힘없는 손으로 컵을 받아 들더니 보일 듯 말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받아든 그것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조심스레 컵을 기울여 입안에 주스를 흘려 넣었나.... 싶은 순간 아이의 눈이 커지더니 "번쩍" 광채가 돌았다. 핏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분명 극락을 맛본 자의 표정이었다.
“음~~~ 헤헤헤~~~ 맛있어...”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웃는 것을 보니 그제야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남편이 내게 나가서 밥을 먹고 오라고 했고, 나는 병원 근처에 있던 추어탕집에 갔다. 주문한 추어탕이 나오자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순간 나도 극락을 맛보았다.
며칠 만에 하는 제대로 된 식사였고, 아이가 괜찮아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집은 나의 소중한 맛집이고 추어탕이 생각날 때 가끔 간다.
예상했겠지만 아이가 다 낫고 나면 성적 따위는 절대 신경 쓰지 않겠다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웃고 있고, 즐거우면 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