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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울고 두 번 웃으며 먹은 핫케이크

by 유명


아이들이 7살, 5살 때였다.

둘은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고구마 캐기 체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날은 모종삽을 준비해 가야 했는데, 딸은 가방 안에 자기 모종삽을 잘 챙겼고 아들은 아침에 모종삽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깜박하고 챙기지 않았다.




나는 아이 둘을 데려다주고 바로 출근을 했는데 , 유치원으로 가던 중 갑자기 아들이 자기 모종삽을 챙겨 오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집으로 다시 가자고 떼를 썼다.



누나걸 빌려 써도 된다~~ 선생님이 안 가져온 친구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것들이 있다~~ 얘길 해도 아들은 고집을 꺽지 않았다.

아들은 모종삽이 없으면 고구마 캐기 체험을 못한다며 고집을 부렸고, 다시 집으로 수는 없다며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집으로 다시 갔다가는 내가 지각을 하기 때문에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좋은 말로 달래도 아들은 울고불며 떼를 썼고, 딸은 동생을 달래면서도 자기 모종삽을 양보해야 하나 눈치를 봤고, 나는 결국 폭발을 했다.


"너는 손으로 고구마 캐~~~~~!!"




나는 매정하게 아들에게 손으로 고구마 캐라며 고함을 지르고는, 우는 아들과 어쩔줄 몰라하는 딸을 유치원에 내려주고 쌩하니 출근을 했다.

가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아이가 고집부릴 때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달래줄걸...

내가 다시 한번 가방 안에 잘 챙겨놓을걸...

네 잘못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딸에게 얘기해 줄걸...

아들한테 고함지르며 그런 말 하지 말걸..




동생에게 자기 모종삽을 양보해야 하나 엄마와 동생의 눈치를 보던 딸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났고 , 손으로 고구마 캐란 소리에 더 크게 울던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후회가 밀려왔고, 모두 내 탓인 것 같았고, 나는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엄마들은 아이를 혼내고 나면 꼭 운다.




자책도 잠시...

나는 다른 유치원으로 출근해서 아이들에게 영어동화구연을 하며 신나게 수업을 했다.(그 당시 나는 유치원에서 영어수업을 하는 영어교사였다)

나는 노래와 율동과 게임까지 아주 혼이 빠지게 수업을 했고, 아침의 그 소동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아침의 그 일이 떠올랐고, 남의 집 아이들과 수업하느라 잊고 있었던 내 아이들이 생각났다.

나... 진짜 엄마 맞나.

미안한 마음에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아이들은 아침의 난리가 무색하게 입이 귀에 걸린 채 욕심껏 캔 고구마를 자랑스럽게 들고 나왔다.




고구마가 가득든 봉지를 손에들고 아이들은 선생님께 공손하게 배꼽인사를 했고,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자기들이 얼마나 고구마를 잘 캤는지 신나게 얘길했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파트 현관문 앞에 검은 봉지가 걸려 있었다.

봉지 안에는 맥도날드 핫케익이크가 6 상자나 있었고 상자마다 3개의 핫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윗집인가? 아랫집인가? 앞집인가? 누구지?

아무리 떠올려봐도 맥도날드 핫케이크를 이렇게나 많이 우리 집에 줄 사람이 없었다.




잘못 배달이 된 건가? 그렇다면 왜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있지?

일단 집으로 가지고 들어와 저걸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집 현관 앞에 빵 좀 사다 놨다. 아덜 줘라~. 요새는 햄버거 같은 거 좋아한다 캐서 너거들 좋아하는데 가서 샀다."




유추해 본 결과 아빠는 요즘 얘들이 좋아한다는 햄버거를 파는 맥도날드로 가셨고, 맛있는 빵 뭐 있냐고 물으셨고, 빵이라는 물음에 직원은 핫케이크가 있다는 말을 했을 것이고, 그럼 이만 원 치 정도 싸달라고 하신 거 같았다.




어수룩한 할아버지가 익숙하지 않은 맥도날드로 가서 메뉴도 잘 모르면서 빵을 주문했고, 햄버거가 아닌 핫케이크를 사서 아무도 없는 우리 집으로 갖고 와 현관 앞에 걸어두고 가신걸 생각하니 울컥해서 또 눈물이 났다.




아침부터 허둥지둥 한바탕 난리를 치며 아들도 울고, 나도 울고, 딸도 울고 싶었을 정신없던 우리의 하루를 어쩜 귀신같이 알고 아빠는 이런 걸 두고 갔을까.




좋은 엄마 되기가 힘들어 울었고, 아이들 때문에 웃었다.

아빠가 준 핫케익 때문에 울었고, 아이들이랑 맛있게 먹으면서 웃었다.



P.S. 나중에 선생님이 준 사진을 보니 아들은 모종삽 세 개를 가지고도 진짜 손으로 고구마를 캤는지 손톱밑에 흙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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