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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돌아오는 기적

by 유명

다이어트는 내게 평생의 숙제였다.

대식가는 아니지만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남기지 못했다.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단 음식은 항상 유혹적이었다.

탄수화물을 좋아하는 것이 날씬한 몸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교만 가면 살이 저절로 빠진다는 어른들의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20대 초반, 동생들과 가끔 특별한 파티를 하곤 했다.

토요일 오후쯤 두 여동생들과 나, 셋은 각자의 용돈을 모았다. 그리고 먹고싶은 과자를 사서 커다란 쟁반에 담았다.



단것과 짠 것을 고루고루 골라 쟁반에 수북이 담으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티비를 보거나 수다를 떨면서 그것들을 먹었다.



과자를 고르는 담당은 주로 막내동생 이었다. 절대 큰언니의 강압은 아니었다.

익숙한 것을 고집하는 나와 바로밑의 동생과는 달리 막내는 새로운 과자를 잘도 골라왔다. 그렇게 고른 과자는 가끔 예상을 넘어 맛있었고, 우리는 동생의 과자 고르는 재주를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해 주었다.



짠맛의 새우깡과 양파링, 달달한 빼빼로나 홈런볼, 처음 보는 과자나 막 출시되어 티비광고에서만 보던 과자까지 조화로운 배치로 쟁반에 담았다.

배가 부르거나 느끼해서 더 먹을수 없을때까지, 또는 쟁반의 바닥이 드러날때까지 그렇게 먹어대니 살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동생들과의 우애는 참으로 깊어갔다.

세자매중 누구도 빼빼 마른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다들 욕심내지 않고 고루고루 잘 나눠 먹은 것 같다.



지금도 우리 세자매는 종종 모여 밥을 먹는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2차는 가끔 막내동생 집으로 간다.

막내는 독특하거나 새로나온 신상과자를 사는 것이 낙인 것 마냥, 언니들을 초대해 과자들을 맛보여줄 날을 기다린 것 마냥 새로운 과자나 독특한 먹거리를 꺼내놓는다.



동생은 언니들이 원하는 커피를 각각 내려주고 냉장고나 냉동고에서 또는 싱크대나 베란다의 정리대에서 끝도없이 먹을 것을 꺼낸다.

예전처럼 우리는 입에 침이 마르게 맛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재주를 칭찬하고, 처음 맛보는 것들에 대한 품평을 하며 자매들의 우애는 또 그렇게 깊어간다.


어제는 새벽 3시반에 잠이 깼다. 도저히 다시 잠이 들지 않아 책이라도 읽으려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글을 써볼까 싶어 컴퓨터를 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알 수 없는 무의식과 알고리즘의 흐름에 따라 유튜브 먹방을 보고 있었다.

케익 먹방이었다.

딸기케익, 초코케익, 망고케익등 아주 달디단 케익의 영상이 모니터에 한가득이었다.

선물받은 성심당케익



작년에 분명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내인생에 한번 정도는 저 먹방 유투버처럼 케익을 사서 나혼자 하나를 다 먹어봐야겠다. 그때만큼은 살찔 걱정은 접어두고, 느끼함과 거부감이 들때까지 극강의 단맛을 느껴봐야겠다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달고 맛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케익 하나를 통째로 먹고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먹었다간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부대낄것이 뻔해 나의 몸이 입의 즐거움보다 속의 편안함을 선택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걱정거리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밥을 거를 정도로 입맛이 없진 않았다.

그래서 입맛없다는 사람을 이해해 보고싶단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평생 그 느낌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보다 식사량과 과식과 식탐이 줄었다. 심지어 입맛이 없을때도 가끔 있다.

동생들에게 “요새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맛있는 것도 없네. 입맛이 없어서 걱정이다” 라고 했더니


“언니야,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안해도 될 걱정이 입맛 없는 걱정이랑 살빠질 걱정이다~”


라고 한다.




입맛이 없을땐 동생들과 외식을 하고 막내동생 집으로 가 신상 먹거리들을 맛보며 수다를 떨면 멀리 달아났던 입맛이 돌아오는 기적을 맛볼 수 있다.

기적을 체험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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