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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조림처럼 늦게, 오래 반짝이는 사람

by 유명

어릴 때는 무척이나 싫어하던 반찬들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우엉이었다.

우엉이 익는 냄새는 답답하고 매캐한 느낌이었고, 머리가 아프고 코끝을 찡~하고 불편하게 찌르는 냄새였다.


사람마다 같은 냄새를 맡고도 느끼는 건 다르겠지만 우엉 익는 냄새가 나면 나는 약간 화도 나고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난 반찬 투정 따위는 해서는 안되고, 맛이 없어도 몸에 좋으면 꾹 참고 먹을 줄 아는 동생들의 모범이 되는 맏이여야 했기 때문이다.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잘 먹는 편이었던 나였지만, 유독 우엉을 먹을 때는 거북스러운 냄새에 숨을 참고 우물우물 씹다가 꾹 삼켰다.

똑똑해진다, 코피 안 난다, 키 큰다는 엄마의 말을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으면서도 편식 없는 아이라는 칭찬에 목말랐던 나는, 싫은 반찬도 내색 않고 참으며 먹었다.

언제쯤 이런 반찬들을 내 맘대로 안먹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 우엉을 안 먹어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어른이 되고 나면 절대로 안 먹을 줄 알았던 우엉이 맛있다.

아니,, 막 입에 쫙쫙 붙게 맛있지는 않은데 그런데 어쨌든 맛있다.


어른이 되니 좋아지는 음식들이 있다.

우엉 말고도 연근이 그렇고, 묶은 나물볶음이 그렇고, 찰밥이 그렇다.

굴과 고기의 비계와, 파와 콩같은 거북하던 것들의 고유한 맛과 향을 이제는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싫어도 싫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며 먹은 반찬들.

어른이 되면 입에도 안 댈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 맛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의 일이란 이렇게 장담할 수가 없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다른 의견과 성향으로 원수처럼 싸우면서도 30년 넘게 우정을 지키기도 하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왔다가 평생의 은인이 되기도 한다.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남자와 결혼을 하게도 되고, 첫인상 느낌과는 다른 친구와 베프가 되기도 했으며, 친하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한참이 지나 문득문득 좋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옛날엔 사람이든 물건이든 반짝이고 빛나면 다 좋아 보였다.

그런데 우엉조림이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도 장담할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반짝이고 빛나던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잘나고 성공하고 부러울 만큼 반짝이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따뜻했고, 작은 데도 정성을 다하던 사람이었다.

빛나고 싶어 잔뜩 힘이 들어간 나의 경박한 욕심을 편안하게 내려놓게 하는 이.

다 터놓고 얘기하지 않아도, 사소한 일상 얘기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던 이.

마음이 부산스럽고 바스락 거릴 때 그 사람의 단정하고도 단단한 미소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사는 거리가 멀어지며 연락이 뜸하게 되었을 때만해도 그사람이 이렇게 오래 내 마음에 남을 줄 몰랐다.

말이 별로 없었고, 그저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조용한 미소가 이렇게나 오래 생각날 줄 몰랐다.

소박한 것에도 정성을 다하면 그 어떤 것보다 환하고 오래 빛이 난다는 것을 이렇게 늦게 알게도 된다.


내가 우엉조림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그 사람도 뒤늦게 오래 내 마음에 남았다는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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