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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탕 먹을 줄 알면 다 컸네

by 유명

길을 걷다 넘어졌다.


인도와 찻길의 단차가 없는 길이라 편하게 걷고 있었는데, 움푹 파여 고르지 못한 곳이 있었나 보다.

오른발로 거길 밟았고, 균형을 잡으려 했으나 안정되지 않은 발바닥 때문에 발목이 양옆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휘청했지만 그 짧은 찰나도 내가 균형을 잡고 바로 설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믿음과는 달리 앞으로 고꾸라지는 나의 상체를 느꼈다.

뒤이어 왼쪽 무릎이 구부러지며 바닥에 닿았고, 두 손을 앞으로 짚으며 넘어졌다.


하필 맛집 근처였고,길게 있는 사람들이 쳐다볼 것을 생각하면 아픈것보다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는게 우선이었다. 최대한 부끄럽지 않은 척 일어나 옷과 손바닥을 탁탁 털고 걸어갔다.

걸어가며 계속 생각했다.


내가 저런 상황에 균형을 못 잡던 사람이었던가.

나이가 들어 균형감각이 떨어진 것인가.

몸에 근력이 줄어 순간적인 균형 상실을 버티지 못했나.

지금 내 발목은 괜찮은가.

당장 오늘 저녁에 달리기를 할 수 있을까.

내일 아들이랑 가기로 한 등산은 어떻게 하지?


시큰시큰하던 발목이 밤이 되자 심하게 붓고 아파왔다.

냉찜질을 하는 내 옆에서 딸은 "엄마, 괜찮아?" 하며 걱정을 했고, 아들은 방에서 발목압박 밴드를 찾아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프면 모든 게 내 몫이었다.

상태를 체크하는 것도, 병원을 알아보고 데려가는 것도, 약을 먹이고 돌보는 것도.

상태가 나아졌는지 체크했고, 다 나았다 싶으면 조그만 산 하나를 넘은 느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한 인간의 몫을 제대로 해낼까.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잘 키우고 있는 것이 맞을까.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도 많았다.

그때 나는 최선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세상에 태어나 무언가에 가장 오랫동안, 가장 열심히, 가장 최선을 다했던 시간들.

최선을 다해 사랑한 줄 알았지만 사실은 사랑하는 것이 가장 쉬웠다.

그래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는 그때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쩌면 "조금은 신이 난 상태" 였던것 같다.

힘들거나 두려운 순간들도 있었겠지만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은 무엇보다 큰 행복이었다.

울고 웃으며 아이들과 함께 나도 컸다.



절뚝이며 간 병원에서 다행히 골절은 아니니 진통제 먹고 일주일 정도 발목을 많이 아끼란 처방을 받았고, 아들과는 등산대신 어탕을 먹으러 갔다.


조금이라도 비린 음식은 쳐다도 안보는 아들이 엄마가 좋아하는"어탕"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나는 혹시라도 비리거나 입에 맞지 않을까 봐 걱정을 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아들은 들깨가루를 풀어 맛있게 잘 먹었고 나는

"어탕 먹을 줄 알면 이제 다 컸네."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어탕집을 갈 때는 매운 어탕을 못 먹는 얘들 때문에 <짱구김>을 챙겨 갔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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