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참 무서웠다.
정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고, 인색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이 유독 컸다.
자식들이 고생 안 하고 잘 사는 방법은 일단 공부를 잘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엄마였기에 우리들에 대한 기대는 항상 높았다.
사회의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으셨지만 , 최소한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살도록 원칙과 규범을 강조해 교육하셨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상당히 엄한 기조로 자식들을 키웠다.
자식들을 위해 긴 시간 희생하고 사신걸 모르지는 않지만 돌아보면 엄마가 포근하고 다정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엄마가 내 머리를 양갈래로 땋고, 빨간 인형이 달린 방울로 묶어 주었다.
첫째 딸의 첫 입학이라 엄마도 약간의 기대와 긴장으로 나의 차림새에 꽤나 신경을 썼던 것 같다. 학교까지의 거리가 제법 멀었고 큰 도로를 건너가야 했기에 엄마가 한동안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전날밤에 온 비 때문인지 길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었다. 새 신발에 진흙이 묻을까 봐 나는 최대한 조심조심 걸었다.
학교에 거의 다 와갈 때쯤 길은 온통 진흙 투성이었고 , 그 진창길을 건너지 않고는 교문으로 갈 수가 없었다.
내 하얀 운동화가 더러워지거나 찐득한 진흙에 신발이 훌떡 벗겨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지 엄마가 등을 내밀며 내게 업히라고 했다.
14개월 터울과 4살 터울의 동생이 있었기에 만 두 살이 되기도 전부터 항상 큰 얘였던 나는 엄마에게 업히는 것이 너무도 어색했다.
나는 쭈뼛쭈뼛 엄마에게 업혔다.
어색하고도 어색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엄마가 따뜻하다고 느꼈다.
엄마는 나를 학교 교문 앞에 내려 주며12월생이라 또래보다 작았을 나를 못 미덥고 애처로운 눈으로 잠시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부모들은 사랑한다고 표현을 하며 오냐오냐 아이를 키우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생각했다.
부지런히 일하고 돈을 벌어 자식들 건사하는 것이 최고의 부모 역할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입밖에 내지 못했고,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데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엄마, 엄마가 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것마냥 자신보다 항상 자식이 우선이었던 엄마가 고마웠지만, 따뜻한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따뜻하거나 다정한 친구들의 엄마들이 신기했고 낯설었다.
오늘 딸과 함께 10킬로 마라톤 대회를 나갔다.
오버 페이스를 했던지 딸은 마라톤이 끝난 후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며 딸이 통증으로 힘들어했다.
"엄마가 업어주까?"
딸은 업히는 시늉을 했고 우리는 킥킥대며 웃었다.
딸을 부축해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다 옛날에 엄마가 업어서 진흙길을 건너 주던 일이 떠올랐다.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며 살았던 내 어린 시절의 결핍을 떠올리며,
내 아이들은 최소한 아이인 동안만이라도 오롯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해주고 싶었다.
어떤 감정이라도 엄마에게만은 이해받을 수 있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노력하며 아이들을 키웠지만 딸에게 첫째라는 이유로 첫째답게 행동하길 바라왔던 시간들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딸에게 그랬다.
하지만 엄마에게 무뚝뚝한 나와는 달리 딸은 복실강아지같이 애교가 많다.
신이 무서웠던 엄마대신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딸을 내게 보내 주신 것 같다.
마라톤을 마치고 딸과 고칼로리 음식들을 죄책감없이 먹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스타벅스로 가서 요즘 핫하다는 블랙 글레이즈드 라떼를 마셨다.
달리고, 먹고, 웃은 오늘.
소중하고 행복한 가을날의 하루가 간다.
음식 때문인지, 달달한 음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무서웠던 엄마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갑자기 애교 많은 딸이 될 수는 없겠지만 나도 엄마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스타벅스로 가서 달달한 메뉴를 마셔야겠다.
그러면 엄마를 조금은 미워했던 죄책감이 덜어 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