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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의 미운오리, 백조가 되기까지

Feat. '기억을 걷는 시간', 기억을 따라 걸었던 시간들 속의 '나'

by 보라


#나만의 고집 혹은 아집? NO! 나만의 확고한 가치관

나는 고집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단지 나는 생활력이 강했고, 알뜰했고, 근검절약했고, 그 가치관에 대해서는 나만의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굳이 필요치 않는 건 사지 않고, 쓰레기 혹은 폐품이라 취급되는 물건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특별하게 변화시키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었다.


엄마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생활력이 강하면 굶어죽지는 않는다고.


어릴땐, 결혼전에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돈을 쓸 줄 모르는 엄마, 아빠가 속상했고, 야속했고, 안타까웠다.(사실 누구보다 존경했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엄마,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엄마,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엄마.


갑자기 엄마와 닮은 나 그리고 기회의 시간이 충분치 않았던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울컥한다.


엄마의 장점만 닮고싶어서, 엄마에게 나는 엄마를 닮았노라, 엄마덕분에 잘 큰 딸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이자, 엄마이자, 교사이자, 그 수많은 타이틀을 엄마에게 증명해내고 싶었다.


엄마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엄마의 기회의 시간을 나에게 쏟았기에 내가 ‘좋은사람’ 이

되었고, 그래서 내가 엄마를 존경하고,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를 응원하고, 엄마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을..




#바빠서 미안해


2022년 9월 7일은, 내가 정식 백수가 된 지 딱 일주일째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백수인 나를 부러워했다.


대다수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백수인 나를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했고 걱정했다.


나는 지금에서야 가장 온전히 나로 꽃피는 시간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모든걸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의지가 너무나도 강한 사람이다.


정말 완벽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고싶지 않았고, 그럴 용기가 없었는데


정말 사람이 ‘본인만의 밑바닥’을 찍고 나면 두려울 것도, 잃을 것도, 무서울 것도 없나보다.


지금 내가 그렇다.


보육교사로 일할 때의 나는 ‘불도저’였다. 앞만 보고 ‘보육교사’ 라는 그 모든 것에 미쳐있었다.

나만의 방식대로 나만의 FM체계를 만들었고, 나만의 교사 가치관을 만들었기에,

나의 가치관을 지켜준 사람들이 환경이 고마웠고,

나의 가치관을 흔드는 사람들과 환경이 미웠다.


나는. 100%는 아니지만 10명 중 8명은 내 첫인상이 착하고 해맑은? 그런 사람일 것 같다.

‘타인이 보는 나’의 관점으로 분석한다면..(?)

서른이 된 나를 지금도 고등학생, 대학생 쯤으로 본다는 건

가끔 억울한 일이 생길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 모든게 장점이다.

10년이나 어려보이고, 10년전의 나와 동일하다고 여긴다면 그건 나에게 가장 큰 칭찬인 것 같다.

서른이 되어서야 확실히 느낀 것을 스무살부터 내재된 행동과 말 속에 나오고 있었다는게 아닐까..?


가끔, 주변에서는 그런다. 너무 착하게 말하지 말아라, 만만하게 보이지 말아라, 호갱, 호구가 되지 말아라 하고..


나의 외형적 이미지가 그렇기에 걱정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의 내면은 누구보다 단단한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옛말에, 조부모님 손에 자라면 아이가 눈치를 많이 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이집에서도 가끔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었던 언어이고,

나 역시 부정적인 인식이 내재되어 있었고, 나는 그런 아이였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는 나는 조부모님의 3살때부터 가장 중요한 그 시기부터 나의 인생에 함께 해주셨기에, 지금의 온전한 나다운 내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다른 내가 키보드 앞에 앉아있을까..?

앉아있지 않을수도 있다.


나는 내게 ‘아빠와 엄마의 역할’ 이 되어 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큰외삼촌, 큰외숙모

어쩌면 나의 3살~7살은 그분들이 바쁜 부모님을 대신 해 ‘나의 또 다른 부모’ 이자

‘나의 유년시절 놀이친구이자 선생님’ 이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사실 분명 나의 보육가치관은 확고하지만, 막상 나에게 어떤 교육을 선호하냐고 물으면 그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유명한 ‘피아제’, ‘비고츠키’같은 학자가 아닌데, 어떻게 나만의 학문을 정의내릴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내가 그랬듯, 일상이 내게 놀이였고, 일상이 내게 놀이의 천국이자 호기심천국이 되었기에.

나는 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도 키워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나의 할머니와 외숙모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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