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김밥

소박하고 완벽한

by 은조

분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김밥을 좋아하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소풍엔 김밥, 김밥엔 소풍. 어렸을 적 소풍을 기다렸던 이유가 김밥인 탓도 있었으니까.


김밥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알게 된 거지만, 엄마는 실로 대단했다. 엄마는 출근하는 와중에도 김밥을 기본 20줄씩은 싸왔던 것이다. 그나마 동생과 소풍 날짜가 같으면 다행인데, 다를 경우에는 또 번거로운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나중에 내가 아이를 키우면 엄마만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제는 김밥을 엄마 혼자 감당할 일은 없다. 나와 동생이 김밥을 만드니까. 엄마는 재료 준비할 때만 우리를 도와주시고, 한석봉 어머니가 떡을 썰 듯이 김밥을 잘 말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시며 김밥을 썰어 우리 입에 넣어 주신다. 누구의 김밥이건 제일 처음 만들어진 김밥은 무조건 썰어 먹어야 한다.


너희는 김밥을 말아라. 나는 김밥을 썰 테니.


지금에야 김밥 전문점들도 많고, 김밥을 대체할 것도 많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김밥을 사 오는 것이 흔치는 않았다. 유부초밥을 싸오는 것도 신기할 때였으니까. 안 싸오면 안 싸왔지 김밥을 사서 오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을뿐더러 그에 대한 시선이 곱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럴 수 있겠지만, 이해보다는 편견이 앞서던 때였다.


그렇지만, 김밥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일 줄은 몰랐었다.

김밥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마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었다.


김밥의 기본 재료는 계란, 시금치, 햄, 맛살, 우엉, 단무지다. 시중에 파는 일반적인 김밥들은 보통 햄과 맛살이 볶이지 않은 채로 들어가는데, 우리 집은 다 볶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단무지나 우엉 빼고는 다 불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스팸과 김밥에 들어가는 햄을 제외하고는 가공육을 좋아하지 않는데, 대학생 때는 유독 햄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 김밥의 햄을 빼고 당근을 많이 넣어달라고 했던 적도 있다.

햄과 맛살은 분리해서 나누고 각각 볶아내고, 계란은 부쳐서 알맞게 썰고, 시금치는 삶아 간을 하고 길게 늘어뜨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서너 개 정도는 참치김밥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마요네즈에 버무린 참치와 깻잎을 넣는데, 이제는 개수를 더 늘려야 한다. 늘 참치김밥만 먹는 남편이 생겼으니 말이다.


재료 준비가 오래 걸리는 것까지도 할 만한데, 제일 난도가 높은 것은 김밥을 마는 것이다. 손에 익을 때까지 참 오래 걸렸더랬다. 처음에는 엄마의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내가 한 개를 겨우 완성시키면 엄마는 벌써 두 개째 김밥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김밥을 싸다 보면 밥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 집은 밥통을 꽉 차게 두 번 돌리는데, 그 양이 어마 무시하다. 갓 지은 밥은 너무 뜨겁기 때문에, 열기로 김이 쪼그라들어 김밥을 싸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김밥에 들어가는 밥은 적당히 질어야 한다. 밥을 너무 많이 깔아도 안 되고, 적게 깔아도 안 된다. 요즘은 밥이 적고 내용물이 꽉 찬 김밥이 대세지만, 우리 집 김밥은 그냥 평범한 김밥이다.


적당히 밥을 깔면, 재료를 빠짐없이 넣어야 하는데, 생각 없이 말다 보면 재료를 한 가지씩 꼭 빠뜨릴 때가 있다. 그래서 김밥말이를 돌리다 말고 여섯 가지가 맞는지 숫자를 세어보기도 한다. 김밥이 형태를 잃지 않도록 동그랗게 잘 말아가는 게 중요한데, 적당한 힘 조절은 필수다. 느슨하게 말린 김밥은 자르다가 자칫 김밥 옆구리가 터지고 재료가 흐트러질 수 있다. 재료가 삐져나오는 건 김밥 꽁다리면 충분하다.

엄마의 고급 스킬은 물방울 모양의 김밥이었는데, 플레이팅을 할 때 김밥끼리 모양을 붙여 꽃 모양이나 하트 모양을 만들 수 있었다. 당시에는 꽤나 센세이션이었다.




나와 동생이 더 이상 소풍을 가지 않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놀러 나갈 때마다 김밥을 쌌다. 힘이 들긴 하더라도 김밥만큼이나 여행 기분을 내는 음식도 없었다. 꼭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마트에서 파는 김밥 재료들은 10개 묶음이거나 20개 묶음이기 때문에, 김밥을 쌀 때마다 보통 20줄을 말게 된다. 그러면 보통 하루 삼시 세끼로 다 해치우는 편인데, 불가피하게 남게 되는 건 쉬지 않도록 냉장고에 넣었다가 계란을 입혀 김밥전을 해 먹는다. 기름에 튀기면 뭐든 맛있는 것처럼 계란에도 실패가 없다.


여행의 정점은 도시락 아니겠는가. 우리 가족 소풍 도시락에는, 거리에 상관없이, 계절을 막론하고 챙겨가는 필수적인 먹거리 세 가지가 있다. 김밥, 컵라면, 믹스커피다.

이른 아침부터 김밥을 싸고 나면, 제일 큰 보온병 1개와 적당한 크기의 보온병 1개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는다. 하나는 컵라면에 쓰는 물이고, 다른 하나는 믹스 커피용이다. 평소에는 둘 다 쳐다보지도 않는데, 먹더라도 먹는 둥 마는 둥인데 밖에 나가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맛이란 건 늘 이렇다.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언제, 누구와 함께였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제일 마음에 드는 곳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으면 우리만의 만찬이 시작된다.

소박하고 완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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