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잡채

단짠단짠

by 은조

면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라면보다는 당면일 것이다. 불백이나 육개장 등에 조금씩 들어있는 당면을 제일 먼저 건져먹는 것도 좋고, 찜닭에 들어간 납작 당면을 잘라먹는 것도 좋다. 만두나 순대에서도 쉽게 당면을 찾을 수 있다.

요새 잡채는 많은 음식점에서 반찬으로도 나오는데, 뷔페에 가면 꼭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잔치음식이다.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프랜차이즈형 샐러드 바보다는 뷔페 음식점이 많았다. 특별한 행사는 모두 뷔페에서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뷔페에 가는 걸 좋아하지만, 막상 가더라도 기껏해야 두 접시가 전부다. 음식 종류는 많지만 생각만큼 다 먹지도 못할뿐더러 손길 가는 게 없다. 그래서 매번 익숙한 음식만 찾아 먹게 되는데, 내 경우에는 그게 잡채였다. 지금도 여전히 예식장 뷔페를 갔을 때 가장 많이 먹는 것도 잡채다. 그래서 가성비 면에서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다. 보통 뷔페에 가서 먹으면 가장 쓸데없는 걸로 잡채가 치부되는데, 주변 사람들이 회나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뷔페까지 와서 잡채로 배를 채우다니.




시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손도 참 빠르신데, 보고 있자면 놀라울 정도로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어 내신다. 잡채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시어머니가 요리하시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매번 상다리 휘어질 정도로 맛 좋은 음식들을 차려주시는데, 메인 음식보다 잡채만 한두 그릇씩 비우는 나를 보고 신기해하신다. 음식으로 이상형 월드컵을 한다면, 떡볶이와 우승 자리를 두고 겨룰 정도니까.

시어머니의 잡채에는 고기가 없다. 물론, 고기 때문에 잡채를 먹는 것도 아니고, 나는 잡채 안에 들어가 있는 채소들을, 특히 표고버섯과 시금치를 좋아한다. 고기가 들어가 있지 않아 처음에는 놀랐는데, 맛을 보고는 고기가 있어도 없어도 되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미미(美味)!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고기가 들어간 잡채를 안 먹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은 장모님한테 고기 잡채를 대접받았다. 친정에서나 시댁에서나 잡채라면 대환영이다. 남편에게도 말했지만, 고기가 들어간다고 잡채 맛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잡채는 원래 맛있었고, 그저 고기 고명이 생겼다 정도일 뿐이다.


엄마의 잡채는 외할머니로부터 이어졌는데, 기본적으로 돼지고기, 표고버섯, 시금치, 당근, 양파, 파프리카가 들어간다. 아주 가끔 목이버섯이나 어묵이 들어갈 때도 있다. 시어머니의 잡채는 계란, 시금치, 당근, 양파, 파프리카가 들어간다. 이렇듯 재료의 차이는 있지만, 잡채 맛은 모두 일품이다. 아무래도 잡채는 단짠단짠한 양념 맛인데, 기본양념 재료가 간장, 설탕, 참기름이 전부다 보니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참 간단한데, 손맛은 아직 엄마들을 따라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두 분 모두 손이 큰 편이라서 요리를 하면 항상 많이 남는 편이다. 잡채도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걱정할 게 없다. 남은 잡채는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을 때마다 잡채를 다시 프라이팬에 볶아서 뜨거운 밥에 올려먹으면 근사한 잡채밥을 만날 수 있다.


코로나로 격리 입원했을 때, 도시락으로 잡채가 나왔었는데 정말 못 먹을 맛이었다. 다행히 열이 난다거나 아프지는 않았지만, 미각상실은 있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맛이 돌아왔지만, 잡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오래된 일처럼 느껴져 몸의 회복이 너무도 반가웠다. 딱 봐도 재료는 조금 들어가고 대부분이 당면뿐이었지만 냄새는 그럴듯했다. 뭘 먹어도 입맛이 없던 때라 잡채를 보고는 신이 나서 한 젓가락 가득 입에 물었는데, 먹는 순간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면은 생각보다 딱딱했고, 양념은 기름지고 느끼했다. 웬만해서는 이렇게 맛없기도 어려운데, 느껴지는 거라곤 참기름 맛뿐이었다. 엄마들의 잡채가 너무나도 그리웠던 순간이었다.


퇴원 후에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도 엄마들의 잡채였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커피와 초코파이도 있었다. 우리가 입원했던 곳은 세끼 식사만 지원되던 곳이라 간식이라든지 그런 걸 준비해오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구급차까지 타고 입원했던 우리가 간식거리까지 챙길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평소에는 초코파이를 사 먹는 일이 없는데도 먹고 싶을 정도였다. 거의 2주 동안 커피와 군것질을 못해서 죽을 맛이었다. 맛있고 몸에 안 좋은 걸 미치게 먹고 싶었다.


시댁에 놀러 갈 때마다 밥상 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잡채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오히려 잡채 먹는 횟수가 늘었다. 과장을 보태면 여태 먹어 온 잡채만큼은 먹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잡채’를 말한 순간부터 잡채와 나는 더 이상 끊어질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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