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avorite Things

장기 프로젝트 <프랑스어 번역가가 되자>

by 은조

물론, 10년 이상을 염두하고 있는 일이다. 생각대로만 진행된다면 통번역대학원까지 준비할 마음이지만, 그렇게 하자면 갈 길이 어마무시하게 멀다. 중간 목표는 DALF C2. 그나마 맨땅에 헤딩이 아니라는 걸 위로 삼아 공부를 시작했다. 불어 공부에 손을 놓은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니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되새기는 중이다. 다행히도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오는 걸 보면 과거의 실력까지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제2외국어로 입문해 수능 성적과 관계없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게 불어였다. 무슨 배짱인지....... 어찌 됐든 그 애정 어린 배짱이 대학에서도 복수 전공으로 이어졌고, 휴학 시절까지 포함해 총 5년 동안 주 전공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복수 전공은 2학년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지만, 새내기 경상학부였던 나는, (아직 주 전공도 정하지 않았는데) 불문학 전공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프랑스 유학을 준비할 생각으로 휴학을 했는데, 갑작스럽게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하나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인생은 가끔 예상을 벗어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졸업요건이 DELF A2 이상이어서 기본 실력으로만 가까스로 자격증을 따놓았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구술을 망칠까 제일 걱정이다. 추후에는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다. A2가 높은 단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해와 작문은 만점 수준이었고, 청취는 보통 이상 정도는 됐는데, 아쉽게도 구술은 엉망이었다. 나름 실전에 강한 스타일인데, 회화는 젬병이다. 머릿속도, 입속도 하얗게 얼어버린다. 어느 정도 실력이 돌아오면 회화에 총력을 다 할 생각이다.


오일파스텔 습작, @eunjo_____


불어에 대한 열망의 원천은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었으리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불어 특유의 비음 섞인 발음이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고, 어렸을 적에 즐겨봤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때문일 수도 있고,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좋아해서였을 수도 있고, 단순하게 가장 맛있는 바게트를 먹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저런, 제각각의 다른 이유들이 한데 모여 내 마음을 불사 질렀던 것 같다.

유학은 결국 못 갔지만, 신혼여행으로는 가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마저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아마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KakaoTalk_20211116_144224549.jpg 나의 마지막 짐들


신혼집에 들어온 지 1년이 되어가지만, 최근에서야 마지막 짐을 들여왔다. 신혼집도 이제 짐들이 충분히 채워지고 있는데, 그걸 보자면 남편과 나는 절대 미니멀 라이프는 아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맥시멈 라이프를 살지 않을까 싶다. 이러니 결혼했겠지.

신혼집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기도 했지만, 꼭 집에서 집으로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방을 바꾼다든지 가구 배치를 다시 한다든지 이사를 하고 공간을 정리를 한다는 건 단지 물리적인 성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조용한 소란들은, 추억을 환기시키며 새로운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마치 지금의 우리처럼.


어쨌든 그 속에는 오래된 불어 책들도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전공서적까지 버리지 않던 것들이 먼지를 머금고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김에 따끈따끈한 신간이 있는지 서점도 둘러보았는데 역시나 크게 달라진 것들이 없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그대로 출판되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2외국어로 많이 선택받는 건 중국어나 일본어 같다. 어차피 동영상 강의 때문에 새로 받은 책들이 있어서 다시 뒤적거릴 만한 상태가 아닌 책들은 과감히 버리고 쓸 만한 것들만 가져오게 되었다.


KakaoTalk_20211116_125836051_01.jpg 세월의 때가 묻은 프랑스어 책들


공부를 하다가 책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보물 찾은 아이처럼 신나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알려주기도 했었는데, 그 시절에는 뭐든 열정이 넘쳤던 것 같다. 지금도 부족한 건 아니지만, 손 때 묻은 책장들 사이사이에서 스무 살의 진심들이 날 것 그대로 흩뿌려져 있는 걸 보니 괜스레 애틋해지는 마음이 있었다.


아직 한 달 반 정도가 남았지만, 올해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렇지만 2020년보다는 훨씬 더 자유롭고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비로소 공식적이 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보다 나은 성장을 위한 발판들이 하나씩 세워지고 있다.


틀림없이, 불어공부도 그중에 하나다.

Bon cour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