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있는 풍경 #3

CDEFGABC

by 은조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또 다른 이름을 배웠다.


C, D, E, F, G, A, B, C


악보를 항상 봐왔기 때문에 오선지 위에 그려진 알파벳 자체가 낯설지는 않았지만, 악보를 읽고 연주하는 방식으로만 피아노를 배워왔던 터라 알파벳 음이름을 기억해서 건반을 눌러야 한다는 게 참 어려웠다.

사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왜 ‘도’가 ‘C’로 시작하는 거지?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악기를 조율할 때 ‘라’ 음을 기준으로 조율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 때문에 국제 표준음인 ‘라’를 ‘A’로 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가 ‘C’가 돼버린 것이다. 국제 표준음이라는 것도 생소했는데, 그것이 도가 아니라는 것에 더 놀랍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을 때 이론 시간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안타깝게도 떠오르는 것들이 전혀 없었다. 가끔 연주랑은 별 상관없는 박자 젓기가 떠오를 뿐이다. 학원에서 배운 건지 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건지 모르겠다. 지휘자가 된 것처럼 4분의 2박자, 4분의 3박자, 4분의 4박자를 손으로 공기를 가르며 박자를 그렸었는데, 그건 연주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반주는 수학 공식이랑 비슷해요.”


문과라서 수포자나 다름없었는데, 수학 공식처럼 생각해야 하다니! 괜한 거리감만 더 커질 뿐이었다.


어쨌든 대문자로 시작되는 게 근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에 화음을 쌓아 코드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섯 종류의 3화음이 있는데, 메이저(Major), 마이너(Minor), 써스포(sus4), 디미니쉬(Diminished), 어그먼트(augmented)가 있었다. 그나마 익숙한 건 메이저와 마이너뿐이었다.

기본 메이저 화음은 1음, 3음, 5음을 누르는 것이다. 마이너는 3음을 플랫(♭)하는 것, 디미니쉬는 3음과 5음을 플랫(♭)하는 것, 어그먼트는 5음을 샵(#)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써스포는 3음이 아닌 4음을 누른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란다. 충격의 도가니다. 알고 보니 반주자들은 대단한 실력자들이었다. 마치 악보에 그려진 것처럼 알파벳 코드만 보고 연주를 할 수 있다니!


첫 시간에는 ‘C', 'F', 'G', 'E', 'A' 코드에 관한 다섯 종류의 화음을 외워야 했다. 코드를 보자마자 건반 위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막상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을 눌러보니 코드 자체를 모르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코드를 적은 쪽지를 가지고 다니며 외우기 시작했다. 연주를 할 때는 안중에도 없던 알파벳들이 또 다른 외국어처럼 느껴졌다. 예체능이 생각지도 못한 암기과목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암기만 하다 보니 손가락이 머리를 따라오지 못했다. 마치 운전을 할 때처럼 몸이 자동적으로 페달을 밟아야 했다.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을지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지 머리로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어떤 페달이 오른쪽에 있는지 왼쪽에 있는지를 머릿속으로 고민하다 보면 갑자기 헷갈리는 것처럼 코드를 생각하다 보면 손가락이 공중에서 버벅거렸다.

아무래도 집과 학원이 가까워서 연습을 하러 가기로 했었는데, 연주곡은 학원에서 연습한다 치더라도 코드는 달랐다. 코드를 평소에도 외우다 보니 건반도 같이 눌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집에 둘 만한 피아노를 장만할까 하다가 전자피아노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금세 접었기 때문이다. 전자피아노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면, 건반을 누르는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패드로 피아노 건반 앱을 설치해 보기도 했는데, 이건 전자피아노만도 못했다.

결국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멜로디언으로 해보시는 건 어때요?”


선생님이 묘안을 주셨다.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건반을 누르는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멜로디언을 불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게 바로 나였다. 그렇게 멜로디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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