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
퇴사 이후 교회에 다니는 것 빼고는 일정한 스케줄이라곤 없었는데, 화요일 저녁 7시마다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생겼다. 물론, 외출을 반기는 쪽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얻은 학생 신분은 오히려 반가웠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지만 말이다. 아직은 돈 많은 백수가 되어보질 못해서 학생이었을 때가 그나마 삶에 있어 제일 단순했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능만 끝나면 다 될 줄 알았었는데....... (많이 어렸죠.)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이 가장 커 보였을 뿐이라는 것을 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학원은 조용했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시간제 개인 레슨과 다를 바가 없어서 사람을 마주치는 일도 없었지만, 그 때문에 악기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악기 소리 외에 다른 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일도 극히 드물었는데, 아무래도 성인 전문 음악 학원이다 보니 피아노실 밖 복도에서 들려오는 음성들이 참으로 간결했다. 예전에 다녔던 교습소에서는 원장 선생님 외에 다른 선생님들도 있었고, 그 때문에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무엇보다 피아노 치는 걸 멈추면 문밖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곤 했다.
물론, 그게 싫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애들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오롯이 레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꽤 마음에 들었다. 타고난 맥시멀리스트이긴 하지만, 공간의 빈틈이 주는 여유로움을 사랑한다. 널찍한 공간에서 홀로 있는 것이 내게는 적막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물론, 저녁이 주는 고요함도 한몫했지만.
처음부터 성인 전문인 걸 따졌던 건 아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과 더 가까운 곳에도 피아노 학원은 있었지만, 만약 근처 학원이 그곳뿐이었다면 피아노를 다시 시작할 결심 따위는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첫 수업을 시작할 참이었다. 살짝 일찍 온 탓에 혼자 레슨실에 앉아있게 되었다. 윤기가 도는 피아노 건반을 내려다보니 문득 친정집에 있는 빛바랜 피아노가 눈에 아른거렸다. 엄마가 처녀 적에 연주했던 피아노라고 하는데, 어느새 우리 집 애물단지가 되었다. 쓸모는 없지만 버릴 수도 없는. 내가 가장 아끼는 상태다.
꽤 오랫동안 현관문 맞은편에 놓여있었지만, 가구 배치를 바꿀 때마다 짐짝이 되어 방과 방 사이를 옮겨 다녔다. 바퀴가 달려 있는데도 무게가 무거워서인지 제 기능을 상실해서인지 여간해서 굴러가지도 않는다. 그때마다 얄팍한 죄책감이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조금 더 널 아껴줬을 텐데.......’
나는 가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곤 했다. 피아노 소리가 집의 적막을 비밀스럽게 깨뜨렸다. 수년간 조율도 되지 않아 제 음을 잃어버린 건반들도 서너 개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피아노를 내 삶에 다시 끌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까.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흐르고 있었지만, 그에 반해 핏기 없는 두 손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매끄럽게 굽혀지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됐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데, 마스크까지 쓰고 있자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레슨실 문이 벌컥 열렸다. 선생님의 등장보다 손에 들린 악보 몇 장을 따라 신경이 곤두섰다.
“책보다는 악보를 그때그때 드릴게요.”
A4에 인쇄된 악보가 피아노 위로 살포시 올려졌다. 다행히도 이미 알고 있던 곡이라 긴장이 살짝 누그러졌다. 이누야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인 <시대를 초월한 마음>이었다. 10여 년 전에도 혼자 연습곡으로 곧잘 쳤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곡이 되어가는구나 싶었다.
“악보 보고 한번 쳐보실래요?”
그때와는 다른 버전이긴 했지만, 충분히 쳐볼 수 있는 곡이었다.
익숙하지만 낯선....... 차갑고 딱딱한 피아노 건반 위로, 드디어 손가락 끝이 맞닿았다. 건반 위로 손을 올려본 지가 언제 적인지 모르겠다. 동화 속에서 나오는 아주,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 같았다. 나도 모르게 뭉클해진 탓에 짧고 통통한 내 손가락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원래 박자대로 치기는 어려웠지만, 곡처럼 들릴 만큼 천천히, 차분하게 악보를 읽어나갔다. 음표들이 눈으로 들어와서 손으로 빠져나갔다. 물론, 틀린 건반 위로 손가락이 움직이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악보를 잘 보시는데요?”
“그래요? 다행이에요.”
처음치고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건반에도, 내 손가락에도 온기가 감돌았다.
“다른 것도 바로 해볼게요.”
이번에는 고양이의 보은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인 <바람이 되어>가 피아노 위로 올라왔다. 딱 봐도 쉽지 않았는데, 역시나 그랬다. 훨씬 더 복잡해진 음표들이 오선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건반을 동시에 두 개씩이나 세 개씩 눌러야 할 때가 많아졌다.
“어렵네요.”
기대와 절망이 뒤엉켜 울먹였다.
“처음인데 이 정도면 엄청 잘하신 거죠~!”
선생님의 격한 칭찬이 민망한 실력에 몸부림치는 날 다독여주려 했지만,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전혀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지 않았다. 손가락이 다시 미워 보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건반을 두드려보니 앞길이 막막해졌다. 평생 치겠다고 큰소리는 쳤는데, 클래식은 엄두도 못 낼 것 같다는 생각이 엄습한 것이다.
첼로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피아노가 주는 내적 친밀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기억을 소환하기만 한다면 접근이 가장 쉬울 거라 여겼는데, 피아노는 결코 연주하기 쉬운 악기가 아니었다. 단순하게 건반을 누른다고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감각들을 깨워내야 했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망각하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피아노란 원래 이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