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결심
2021년 3월 30일.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는 몇 안 되는 날들 중 하나.
15년 만에 평생 바라던 꿈....... 꿈보다는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지극히도 평범한 선택이었지만, 그 바람을 위한 첫걸음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풍경 속에만 머물렀던 피아노 학원이 새로운 거리에서만큼은 유독 눈에 띄었다. 학원 아래 쇼윈도 너머로 기타가 질서정연하게 걸려있는 악기 상점이 있는 탓인지, 아니면 그것이 세탁소나 미용실, 공인중개사 사무소라든지 어디에나 있을법한 전혀 다른 업종들이 뒤섞여있는 아파트 상가가 아닌 탓인지도 모르겠다.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피아노 학원이 보였는데 힐긋거리는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어느 날은 피아노가 대화의 주제가 되어 불쑥 끼어들곤 했다. 내 단짝이 그런 나를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먼저 제안했다. 이사 온 지 네 달째를 채워가는 중이었다.
“피아노 다시 배우면 좋겠는데?”
몇십 년간 한 동네에서만 살아온 탓에 익숙해지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터라 노력 범위 안에 더 이상의 낯선 것들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습관처럼 답했다.
“생각해 볼게.”
한동안 잠자코 있던 내면의 열정이 몰려오는 평화를 깨뜨리며 파도처럼 일렁거렸지만, 그때만큼은 모른 척했다. 정말 나이가 들어갈수록 두려운 것들이 많아지는 것일까? 변화에 맞서는 일에 언제부터 철통방어가 되었을까? 어디까지가 신중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두려운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수십 번쯤은 되뇌고 나서야 단짝에게 고백했다.
“나 피아노 치고 싶어. 기왕이면 평생.”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기회비용을 따져야 했다. 무엇보다 이제 난 홀몸이 아니니까. 단짝의 절대적인 찬성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부터 기인된 건지 모르겠는 마음이 스리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 나름의 이유도 많았지만, 보기에 그럴듯한 이유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취미로 삼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반주를 하고 싶어서’쯤이 적당해 보였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었지만, 반복된 삶의 경험 가운데서 상처받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기제를 만들었다. 가치관이 충돌할 때, 이해와 설득을 위한 일들은 소모전으로 빠지기 일쑤였으니까.
피아노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네 가지 정도 있었지만, 그중에 제일 타당해 보이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쓸모 있는 것’이었다. 평생 이 ‘쓸모’라는 것과 씨름하며, 내 가치를 증명해 보이는 것들을 찾아내는 데에 혈안이 되어야만 했다. 그것이 내 20대의 임무였고, 전부였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세상이 말하는 ‘쓸모없는 것들’, 돈벌이가 되지 않는 것들과 더 긴밀하게 연결된 기분이었다. 쓸모의 굴레에서 늘 발버둥치기 일쑤였고, 그러한 삶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피아노 학원은 2층에 있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계단을 오르는데 괜한 긴장감이 몰려들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남들에게 제아무리 대범한 척 굴어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다.
대학 때, 학교 근처에 있던 피아노 교습소를 들어가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한참은 어린아이들 틈에서도 피아노를 배웠는데, 성인을 전문으로 하는 학원 앞에서 이렇게 주춤거리다니!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그 용기라는 것이 가끔 말썽을 부린다.
과연, 초연해질 때가 오기는 하는 걸까? 그런 나를 대신해 단짝이 단숨에 문을 열었다.
“피아노를 다시 좀 치고 싶어서요.”
나만 알아차릴 만큼만 목소리가 떨렸다.
“아, 배운 적이 있으세요?
“네, 근데 너무 오래돼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케케묵은 기억만큼이나 손가락이 움직여줄지 몰랐다. 통용되는 기준이라고 할 만한 게 체르니 단계였기 때문에 맨 처음으로 ‘체르니 30번’을 말했다. 음악가 이름인지 책 이름인지 모르겠는 혼재된 것들 사이에서 배웠던 것들을 줄줄이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클래식을 좋아하긴 하는데, 다른 곡들도 치고 싶고, 반주법도 배우고 싶어요. 반주는 따로 배운 적이 없거든요. 다 배울 수 있을까요?”
걱정만큼이나 욕심도 많았다. 욕심만큼 배움도 커져야 할 텐데.......
피아니스트라는 거창한 꿈을 가졌다기보다는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내가 좋았던 것 같다.
그걸 새삼 깨닫고 나니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렸을 적, 내 인생의 전부가 피아노로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아니, 있었던 것 같다. 피아노를 치게 된 계기로 보나 기간으로 보나 그렇게 생각할 까닭이 전혀 없는데도 왠지 모를 애틋함이 몸에 흐르는 핏줄처럼 피부 아래로 흘러 다니고 있는 듯했다. 지금의 나도, 그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엄마도, 어떠한 사유로 피아노를 그만두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억이 도무지 없었다. 그만둔 사실 자체만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엄마, 나는 왜 피아노를 그만뒀어?”
“몰라. 네가 치기 싫다고 했겠지.”
오히려 그 불분명한 사유가 나의 의지를 불태웠는지도 모르겠다. 피아노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다고 생각할 수 없게끔 말이다. 기억에 대한 왜곡은 반증이 없는 순간부터 확신이 된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나는 최선을 다했다. 무대 단상에서 울면서도 끝까지 곡을 치고 피아노 의자에서 뛰쳐나오는 어린 시절의 나를 단편적인 꿈처럼 떠올리곤 하니까.
기립박수도, 상도 받았건만 울었다는 사실만 유일하게 추억의 단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피아노 참 잘 쳤었는데.......”
가끔은 칭찬에 인색한 아빠마저도 미련이 잔뜩 묻어있는 단상 위로 아쉬움을 던진다. 자식을 향한 콩깍지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굳이 사실 유무를 따지자고 토를 달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낯간지러운 순간을 이겨보려 고개를 가볍게 흔들 뿐이었다.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기보다는 꾸역꾸역 연습을 해온 결과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숙제로 부여된 연습량만큼 포도 알맹이를 까맣게 칠하는 것에 정직했던, 손 모양 때문에 손등을 맞는 것도 당연했던, 순수한 시절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