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있는 풍경 #4

베토벤에 관한 단상, 그리고 열정

by 은조


베토벤이 말했다.


“틀린 음을 연주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열정 없이 연주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 Ludwig van Beethoven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함. 존경의 사전적 의미이다.

살아오면서 ‘존경할 만한’ 어른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스스로가 그렇게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고 참 많이 방황하기도 했었다. 존경의 대상이 주는 힘, 그런 것 따위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것처럼 해마 밖 어딘가로 자취를 감춰버린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창하고 낡은 단어 위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낼 수 있는 날이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존경’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절에는 수많은 위인들이 책장 위에 가득 꽂혀있었다. 세종대왕 다음가는 위인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에게 위인전 독후감 숙제로 빠지지 않던 인물 중에는 베토벤이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됐음에도 음악가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꼬마였던 나에게 큰 충격이자 감명이 되었다. 건반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한계를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1926년도의 조선에서도 베토벤은 대단했다. 베토벤 사후 100주년을 알리는 기사들이 곳곳에 실렸다고 하니 말이다. 그 시절, 그 시대에 그 먼 나라의 음악가가 오늘날처럼 거장으로 칭송됐다니!

이렇게 대단한 거장이 하는 말에서 어찌 위로를 받지 못하겠는가.






천부적인 재능은 없더라도, 그만한 열정은 불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위로는 잠시뿐이었다.

레슨은 4주 기준/주당 1회로, 대략 한 달에 네 번꼴. 평생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횟수였다. 하지만, 몇 주를 지나 보내고 나니 아주 당연한 소리지만, 수업보다는 연습이 중요했다.

선생님의 능력치와는 별개로 매주 수업만 받는다고 나의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는 없는 법. 그나마 장점이라 치부할 수 있는, 초견은 가속도가 붙었지만, 건반을 누르는 속도와 테크닉이 붙으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손가락에서 돌먼지를 털어내는 일. 그것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무던한 연습만이 답이었다.

초심의 열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열정과 실력이 비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가 가까울수록 지각하게 되는 것처럼 코앞에 있는 학원이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매일의 집안일과 벌여놓은 일들을 마주한 채로 연습하러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선택의 싸움-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아직은 해야 할 일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피아노를 치고 싶어서 연습을 하는 건지, 레슨을 받기 위해 연습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시험 보기 전 벼락치기 하는 것 마냥 연습을 했다. 진도가 나가면 나가는 대로, 안 나가면 안 나가는 대로 문제였다.


매일의 연습이 부족하더라도 진도를 생각하면 레슨 직전에 연습하는 것이 실상 효과적이긴 했지만,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 피할 수 없는 물음표가 마음속에 찍혔다.






누군가 그랬다. 나중에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좋아하는 그 한 가지를 살리기 위해서 싫어하는 열 가지를 감수해야 한다고.

바로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의 열정이 일회용이 되지 않도록 끝까지 힘을 내볼 뿐.

단지 피아노뿐이 아니라,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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