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초코케이크

그 참을 수 없는 달콤함

by 은조

기념일이나 제사, 연휴 등 가족 행사가 집집마다 있을 테지만, 친정 식구들과는 빠짐없이 치러왔던 행사가 생일이었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집만의 공공연한 룰이 있었는데, 소고기 미역국과 케이크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와 동생이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는 엄마가 본인 생일에도 직접 미역국을 끓여내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부엌은 우리가 쉽게 침범할 수 없는 엄마의 영역임에는 틀림없었다.

식구들이 생일 당일 저녁시간에 모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일파티가 출근하기 전이나 등교하기 전에 열렸다. 가족 모두가 아침에는 로우 텐션이라, 가끔은 잠긴 목소리로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보다 손뼉 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새벽 6시에 눈을 뜨자마자 불을 붙이고, 초를 불고, 케이크를 자르고, 먹기까지 하는 건 사실 내 생일상이더라도 엄청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닌지라 아침식사보다는 잠을 택하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고, 아침은 맛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을 수 없는 건, 오로지 초코케이크뿐이었다. 아마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초코케이크를 선택했던 것 같다. 옛날 사진 속 생일 케이크는 죄다 초코케이크였으니까.


당연히 초콜릿을 좋아했지만, 그 이외에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외가 친척들과는 크리스마스 때에도 가끔 모일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어김없이 초코케이크가 테이블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카 사랑이 넘치던 이모와 삼촌들 덕분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적갈색 니트를 챙겨 입고, 생일도 아닌데 주인공인 것 마냥 고깔모자까지 쓰고, 제일 먼저 케이크를 잘랐다. 금색 크리스마스 모루로 장식된 트리 아래 둘러앉아 웃고 떠들었던, 서로의 얼굴만 봐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초코크림의 달달함이 어린 시절과 녹아들어 특별함을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다.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기억이 맞닿아 있기 때문 아닐까.




대부분 ‘초코케이크’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영화 <마틸다>에서 브루스가 거대한 초코 범벅 케이크를 먹는 장면일 거다. (물론, 맛있게 먹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마틸다 케이크’는 초코케이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 때문인지 나도 엄청 크거나 단이 높은 케이크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브루스처럼 용감하게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5단으로 된 웨딩 케이크에 대한 로망이 아주 잠깐 있었지만, 어쩌면 그 로망은 초코파이 케이크만으로도 충분해서 저절로 사그라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케이크를 먹고 싶을 때는 조각 케이크를 사면 충분하지만, 가끔은 홀케이크에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홀케이크가 아니면 완벽한 케이크가 아니니까. 사람들과 나눠먹을 때는 케이크를 반으로 나누는 것부터가 커팅의 시작인데, 혼자 일 때는 케이크의 형태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반으로 나누지 않고 먹는 만큼만 조각으로 떼어낸다.


한 조각만 먹어야지.

한 조각만 더 먹어야지.

정말 마지막으로.


케이크가 전부 사라질 때까지 떼어낸 케이크 조각만큼 부사가 따라붙는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시즌 4에서도 미란다가 초코케이크에 한창 빠져있던 장면이 나온다. 74달러 50 센트라는 초코케이크 가격에 놀라 직접 만들어보기로 하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사각형 모양의 케이크를 구워 칼로 조금씩 잘라먹다가 결국 부엌에 선 채로 계속해서 집어먹는다.

꾸덕꾸덕한 초콜릿이 입안에 녹아드는데 어찌 손이 멈출 수 있겠나. 초콜릿과 밀가루의 조합은 거부할 수 없다. 전적으로 공감되던 장면이었다. 물론,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케이크까지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미란다는 쓰레기통에 버린 케이크를 맛보더니 수화기를 들어 캐리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I know you're probably busy having mind-blowing sex right now...

but I feel that you need to know,

your good friend, Miranda Hobbes has just taken a piece of cake out of the garbage and eaten it. You'll probably need this information when you check me in to the Betty Crocker Clinic.


덕분에 초코케이크에 대한 나의 애정력이 상승했다.




남편과 나는 연애 초에 꼭 잊지 말아야 할 기념일들에 대해 정해놓았다. 남편이 섬세한 편이라 기념일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었겠지만, 우리 둘 다 모든 기념일을 챙길 필요는 없다는데 동의했다. 각각의 생일, 그리고 사귀기 시작한 날, 세 가지 기념일만 챙기자고 했다.

이를테면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 반복적인 이벤트는 제외되었다. 특정 날과 상관없이 페레로 로셰 한 줄 같이 나눠먹는 정도는 허용했다. 그리고 100일, 300일, 1000일....... 백 단위의 날짜로 기념하기보다는 1년마다 한 번씩만 기념하기로 해서 1주년이 우리의 첫 번째 기념일이 되었다.

우리의 첫 번째 케이크는 사실 초코케이크는 아니었다. 1주년 기념으로 제주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그 당시는 남자 친구였던 남편을 위한 깜짝 이벤트로 여행 동선에 맞게 픽업할 수 있도록 예약을 해놓았었다. 생화로 제작된 당근 케이크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를 위해 선택한 케이크였다. 앞으로는 초코케이크를 위한 날들이 더 많을 테니까.

작년 12월, 두 번째 기념일을 마지막으로, 내년 6월에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할 예정이다.

어김없이 초코케이크와 함께.


초코케이크가 주는 특별함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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