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라면

일종의 길티 플레저

by 은조

전 전도사의 아내, 이제 막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으로서 음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모임 자리에서 술은 무조건 마셔야 하고, 술을 권하는 부류도 아니지만, 나름 술 부심이 있는 사람인지라 살이 찐다든지 건강상의 염려라든지, (물론 이것도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신앙적인 부분까지 생기다 보니 금주는 아니더라도 절주 쪽으로 생활이 바뀌게 된 것은 확실하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음주에 대해 누군가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고, 주변에서 음주나 금주를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다.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음주 문화에 묻어들었을 뿐이다.

대학교 MT를 갔을 때, 소주 한 짝을 옆에 두고 병째로 홀짝거리던 게 가장 많이 마셨던 때라 가늠해 보지만, 정확히 세어본 적은 없어서 주량도 모른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지 한 잔만 마셔도 온몸이 뻘겋게 변하긴 하지만, 정작 취한 적도 없다. 필름이 끊긴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런 일이 생겼다면 술을 일절 입에 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격상 어느 누구에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알코올의 힘보다는 강한 것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애주가들이 꿈꾸는 것처럼, 나도 퇴근 후에 소박하게 술 한 잔씩 기울이며 대화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 했고, 그 꿈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게 일상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주제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종교관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본인의 종교관을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다. 물론, 그와 닮은 종교관을 갖게 되겠지만, 그랬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를 수 있었다.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금주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음주로 불편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기꺼이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성인이 되고부터 서울로 올라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어느새 혼자가 익숙해졌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무리 없이 즐겼지만, 혼자가 편했다. 주변 몇몇은 혼자라서 외롭지 않다는 게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지만, 외로워서가 아닌, 편했기 때문에 혼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거한 음식도 필요 없고, 언제든 마음 편히 드러누울 수 있었으니까.

대학 기숙사 시절부터 와인을 혼술 하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나였다. 와인도 차갑게 먹는 편인데, 그때는 개인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창가에 와인을 놔두고 먹을 수 있는 겨울을 더욱 좋아했다. 와인은 안주 없이 먹는 날이 많았지만, 주된 안줏거리는 생라면이었다. 막걸리를 생각하면 파전을 떠올리듯 술과 조화로운 음식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내게 마리아주는 거추장스러운 단어일 뿐이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 혼이 날까 봐 동생과 몰래 숨겨 먹곤 했던 게 생라면이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었다. 혼내는 사람도 없었고, 라면을 나눠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자유가 가미된 생라면은 20대 뱃살의 원흉이 되었다.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 캔은 하루 사이의 노고를 싹 가시게 해주는 피로회복제였고, 모두가 다 아는 그 맛은 중독될 만큼이나 맛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생라면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탁월했다. 오도독 씹는 식감에 매운맛까지 더해지니, 어떤 안주도 부럽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쭉 엄카 찬스를 이용하고 있던 터라 대학시절도 궁핍하게 지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졸업 후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뿐더러 하고 싶은 일들이 열정 페이로 시작됐던 터라 생활고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잡지사 어시스턴트로 일할 때는 생활비 때문에 투잡을 뛰기도 했는데, 합해도 기껏해야 기본급도 안 되는 돈이었다.


‘꿈을 위해서라면’


이 지독히도 평범한, 신기루 같은 말 한마디가 나를 유일하게 지탱해 주던 때였다.

술맛을 알면 인생을 안다고 했던가. 소주의 단맛을 알아갈 무렵, 나는 내 꿈이 단지 직업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바라 마지않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 시절에 나는 인생을 알았을까?

이렇게 묻는다면, 확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헐레벌떡 택시로 뛰어드는 나를 보고 택시 기사님이 물으셨다.


“인생이 즐거워?”


당황하긴 했지만, 주저 없이 답했다.


“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두근거려요.”


영화 대사도 아닌 것이 오글거렸지만, 좋든 싫든 이게 내가 살아가던 방식이었다.

오버스러울 수 있지만, 그럴싸하게 청춘스러운.




어쨌거나 동생과 라면을 끓여먹을 때는 주로 하나를 끓여 반씩 나눠먹고, 한 공기도 아닌 밥 한 숟갈씩 야무지게 말아 먹으면 충분히 배가 불렀는데, 끓여먹을 때는 하나로도 충분한 라면이 생라면일 때는 왜 이리도 부족한지 모르겠다. 뭐가 그리 아쉬운지 수프 더미에 파묻힌, 잘린 라면 조각들을 찾아 손가락으로 계속 찍어 먹게 된다. 그렇게 생라면 한 봉지를 해치우고 나면 주변이 수프로 난장판이다. 꼭 손톱 아래 낀 수프까지 제대로 씻어내야 한다.


내 기준에는 끓여먹을 때 맛있는 라면이 생라면일 때도 맛있어서 딱히 생라면 특화 라면을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졌다면 먹는 방식에 차이가 생겼을 뿐이다. 가끔 라면땅을 해먹기도 하지만, 나는 본디 라면째로 부숴 먹는 게 워낙 좋다.

예전에는 잘게 부순 상태에서 수프를 봉지에 통째로 털어 넣고 흔들어 먹었다면, 이제는 그냥 큼직큼직하게 조각내어 수프를 찍어 먹는다. 그러다 보니 한 봉지는 금세 사라진다.


이제는 살이 찌는 것에 민감해진 탓인지 그 당시처럼 먹지는 않지만, 술을 마시는 날이 생길 때면 제일 먼저 집어 드는 것이 생라면이다.

일종의 길티 플레저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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