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보양식
나는 오리고기를 나름 좋아한다. 우리 가족은 외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가끔 엄마가 회식장소가 만족스러울 경우 나중에 꼭 가족들을 데려가곤 했다. 그중에도 많이 먹었던 게, 지금은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린 오리바켄이었다. 광주에서 ‘상무정’이라는 유명한 오리고기 전문점에서 파는 메뉴였는데, 독일식으로 구워낸 요리라고 한다. 튀긴 듯 안 튀긴 듯 바삭한 껍질에 달짝지근한 소스가 뿌려져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치킨보다 더 좋아했던 요리였다.
오리바켄도 나름 유명세가 있었지만, 타 지역 사람들은 광주를 방문할 때면 오리탕을 먹고 간다고 한다. 정작 나는 광주에서 오리탕을 먹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 입학 후에 서울에서 10년 이상 살다 보니 광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때는 집과 학교가 전부였던 시절이었기에 남편과 만나면서부터 광주를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즐비한 오리탕 가게들도 남편과 세탁소를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오리탕 거리가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을 정도로 광주에 대해 모르기도 하지만, 내게 오리탕은 단순한 보양식이 아니었다.
나의 오리탕은 외할아버지의 요리였다.
외할아버지는 천안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도로 코너에 있는 자그마한 슈퍼마켓을 운영하셨다. 문 옆으로 바로 내 키만 한 여닫이 냉장고가 있었고, 평상 앞 정중앙 자리에는 오래된 난로가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겨울이면 난로 위에 동생과 내가 먹을 우유를 두 개씩 올려놓으셨는데, 그러면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평상에 나란히 앉아 따뜻해진 우유를 해치우곤 했다.
약주를 좋아하셨던 외할아버지의 얼굴은 늘 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유난히도 볼록한 이마가 연세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외할아버지께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귀여웠다.
가족들이 놀러 갈 때마다 오리탕을 직접 요리해 주셨는데, 약주할 때 늘 사용하시는 작은 소반 위로 오리탕 한 그릇만 올려주셨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이 각자 밥그릇만 들고 오리탕을 먹었다. 그러면 소반 모서리에 오리 뼈만 하나둘씩 쌓아놓았다.
집안에 계실 때는 항상 러닝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셨는데, 커다란 솥 앞에서 주걱을 휘저으시던 외할아버지의 왜소한 어깨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이것들만이 외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확실한 기억이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세상을 떠나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의 기억이 워낙 단편적이라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감정까지 온전치 못한 것은 아니다.
내 생애 처음 겪은 장례식이 바로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이다. 그날은 유난히도 햇빛이 강했던 날이었다. 해가 뜨거워 여러 번이나 쳐다본 기억이 난다. 엄마의 얼굴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지만, 심해처럼 어두웠다. 젖은 손수건을 움켜쥔 외할머니의 손등에서 차마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똑같은 표정으로 발인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상실에 대한 슬픔을 못 이기고 고개를 떨구었다. 엄마의 숨죽인 울음소리가 온 세상의 소리를 덮는 듯했다.
그렇게 슬픔이라는 낯선 감정과 난생처음 마주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감정 섞인 눈물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죽음에 대한 인지는 부족했지만, 모든 것들이 슬퍼야 할 때임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외할머니나 엄마가 오리탕을 해주실 때면, 외할아버지의 오리탕과 비슷한 맛이 났다. 그러면 나는 외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오리탕 하면 할아버지 생각나지?”
“할아버지가 오리탕해주면 잘 먹었는디~”
외가 식구들이 만나면 늘 내게 하는 말이었다.
오리탕을 요리해서만 먹었다 보니 요즘같이 모든 게 배달이 되는 세상에서도, 오리탕이 사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새내기 주부가 되긴 했지만, 오리탕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요리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엄마의 손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평소에 자주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라서 그 존재감이 한층 무거워지는 듯하다. 그렇다고 마냥 슬픈 요리는 아니다. 외할아버지의 요리가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걸 알만큼은 컸으니까. 오리탕이 더욱 뜨겁고, 든든한 맛이 나는 이유다.
고기 냄새에 민감해서 육류나 가금류보다는 탄수화물이나 채소를 더 많이 먹는 편인데, 그래서 오리탕도 오리고기 자체보다는 탕에 들어간 토란대나 머위대를 위주로 먹는 편이다. 야들야들한 살코기와 야채 건더기를 다 먹고 나면, 고소한 들깻가루로 걸쭉해진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다. 그 맛이 기막히게 좋아하는 맛이다.
하루 사이에 온도가 뚝 떨어졌다. 가을 문턱에도 못 갔는데, 벌써 겨울이 찾아와 버렸다. 길거리에서 뽀글이와 패딩 점퍼가 드문드문 보였다. 시간을 훌쩍 뛰어버린, 나를 포함해 계절에 대비를 못한 여름의 보행자들은 어깨를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다.
겨울옷을 당장 옷장에서 꺼내야겠다.
그리고 겨울이 돌아온 기념으로 이번에는 남편과 오리탕 맛집을 찾아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