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김치찌개

다소 칼칼한 온기

by 은조

계란 프라이 다음으로 김치찌개만큼이나 평범하지만 완벽한 메뉴가 있을까. 김치가 들어가는 음식 중에 맛없는 것은 없다.

외할머니의 김치는 자타공인된 김치였으니 김치를 좋아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했고, 타고난 먹성에 반찬투정이란 걸 모르고 자라서 김치에 밥만 있어도 맛있게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외할머니 댁에 모여 보통 150포기 정도를 담갔는데, 우리 집, 작은 이모네, 작은 삼촌네, 이렇게 세 가족이 나누어 먹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 집이 김장을 했는지 항상 궁금해했다. 그때마다 정 많으신 우리 외할머니는 본인의 김치를 아낌없이 나눠주곤 하셨다.


수능이 끝나고 처음으로 김장을 도왔는데, 눈물 젖은 김치가 따로 없었다. 배추에 다대기 양념을 버무리는 게 내 역할이었는데, 요령이 없는 탓에 김장을 끝내고 나니 팔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혼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드러누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데, 외할머니가 손녀를 찾으러 오셨다. 손녀가 혼자 울고 있는 게 안쓰럽기도 하지만 귀여우신지 웃으시며 양 팔에 파스를 붙여주셨다. 눈물이 나는데 웃겼다. 우리 가족의 웃픈 사건 중 하나다.

사실 내가 준비하는 것은 딱히 없었다. 외할머니가 재료 손질까지 다 해놓았을 때 가서 마무리를 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외할머니의 수고로움을 알고 나니 그 이후로는 차마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비싼 이유가 다 있었다.


김장을 끝내면 그대로 잔치 분위기로 이어진다. 작은 삼촌이 미리 사놓은 고기를 삶기 시작하고, 다 같이 보쌈 먹을 준비를 한다. 갓 지은 흰쌀밥에, 이제 막 버무린 김치 한 포기면 끝이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면 목욕탕 가는 것이 필수 코스였는데, 뜨끈한 온탕에 몸을 지져야 몸살이 나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목욕탕을 못 가는 게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요리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나도 김치찌개를 끓일 수 있었다. 요리 문외한이라도 김치랑 참치 캔만 있으면 뚝딱이니까. 김치가 다하는 요리였다. 김치가 맛있으면 김치찌개도 맛있다. 물론, 추가적으로 대파와 양파도 썰어놓고, 설탕으로 약간의 감칠맛을 더하기는 하지만, 이만큼 간편한 요리도 없었다.

아빠가 잘하는 요리 중 하나도 참치 김치찌개다. 이제는 더 이상 나아질 필요도 없이 맛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엄마와는 전혀 다른 요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빠는 김치를 볶는 식으로 조리하다 보니 국물이 없고 잘게 썬 김치와 흩어진 참치살이 엉켜 붙어있는데, 볶음김치 맛이 나는 김치찌개다. 그래서 아빠의 김치찌개는 밥에 비벼 먹다시피 먹게 된다. 그에 반해 엄마의 참치 김치찌개는 적당한 크기로 썬 김치를 오래 끓이는 식으로 조리하다 보니 국물이 많고, 참치살이 모양을 잃지 않고 뭉쳐 있다. 그리고 재료가 참치로 국한되지도 않는다. 돼지고기, 고등어 등 다양한 재료를 넘나든다.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할 때면, 두부라든지 콩나물이라든지 추가되는 재료도 많다. 가끔 동생은 기똥차게 살코기만 추려 먹지만.


부재료로 참치나 돼지고기를 넣을 때가 많지만, 우리 집 김치찌개는 주로 꽁치통조림을 사용한 김치찌개였다. 내 기준에서는 돼지고기를 넣으면 국물이 텁텁하고, 참치 통조림은 생선살을 먹는 느낌이 나지 않아서 별로다. 물론, 꽁치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나는 그것이 싫지 않다. 오히려 개운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그리고 꽁치가 좋은 이유는, 고등어 다음으로 뼈 바르는 게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못 바른 뼈가 있다 해도 꽤 씹을 만하다.

꽁치 토막을 반으로 나눠 뼈를 빼내면, 또 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러면 금방 네 토막이 된다. 푹 익은 김치와 한 토막씩 올려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꽁치 김치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처음 내게 요리를 해줄 때는 미심쩍어했는데 맛을 보고 나서는 달라졌다. 신혼집 찬장에는 통치 통조림이 늘 채워져 있다. 김치찌개를 할 때 두 개씩은 넣어야 하니까. 고기를 좋아하고,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익숙한 사람이라 걱정했는데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었다.

연애하던 시절, 자주 해 먹던 요리도 꽁치 김치찌개였다. 남편의 자취방은 회사 근처에 있었고, 나는 한 시간 거리로 출퇴근을 해야 했는데,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더라도 아쉬운 마음에 다시 돌아가는 일이 수백 번이었다. 그를 보지 않는 시간은 낭비였다.

다시 돌아가는 시간 동안 남편은 우리가 함께 먹을 김치찌개를 요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마티스 그림이 그려진 테이블에 김치찌개를 올려놓고, 곁들여 먹을 청하 한 병을 따뜻하게 데워놓고 나를 기다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훈훈한 공기를 가르며 버선발로 뛰쳐나와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초조함이 아닌 안정감을 느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일이다.

오늘은 뭘 먹을지, 매 끼니를 걱정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늘 다정한 순간이다.

이전 05화4 오리탕